참여정부 '아파트 후분양제' 실험은 과연 실패했을까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김사무엘 기자 | 2016.11.18 04:46

[부동산시장 왜곡하는 선분양제-①]주거안정보다 산업 우선…소비자는 여전히 뒷전

편집자주 | 청약 광풍으로 불릴 정도의 부동산 열기를 등에 업고 무분별한 밀어내기 분양이 판을 치면서 공급과잉과 악성 미분양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를수록 공급 과잉 후폭풍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왜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선분양이 중심인 우리 주택공급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머니투데이 DB
선분양제는 새로 아파트를 지을 때 먼저 청약절차를 거쳐 구매계약을 체결한다. 가상의 모델하우스만 보고 수억원짜리 아파트를 미리 구매하는 것이다. 계약금, 중도금 등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가는 건설자금도 소비자가 책임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한 바보짓이 없다. 완성품을 보지도 못하고 물건을 사는 데다 물건을 만드는 데 드는 돈도 대신 융통해준다. 경기가 좋아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는 2~3년 뒤 아파트 시세가 분양가를 웃돌면 좋겠지만 반대의 경우, 그에 따르는 손실도 소비자의 몫이다.

선분양제도는 1977년 주택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당시만 해도 주택보급률은 70%를 간신히 넘겼고 빠르게 전개되는 공업화, 도시화와 맞물려 주택 대량 공급이 절실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1980년 주택보급률은 71.2%(통계청 주택총조사 기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공급을 원활히 한다는 목표 아래 정부나 건설사 대신 소비자가 개발비용을 미리 내는 선분양제가 탄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돈다. 1995년만 해도 86.0%(이하 국토교통부 종전 주택보급률 기준)에 불과하던 전국 주택보급률은 2002년 100.6%로 처음 100%를 넘어선 이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주택보급률이 118.1%에 달했다. 이미 필요 가구 수보다 많은 주택이 공급된 상황이다.

◇100% 넘긴 주택보급률…후분양 고민할 때=선분양제는 부지를 매입하는 최소한의 비용만 있으면 추가적인 자금 부담 없이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구조다. 반대로 소비자는 사실상 중도 분양 계약 해지가 불가능하다.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소비자가 떠안는 것은 물론 분양부터 입주까지 2~3년간 부동산 경기 변화에 대한 책임도 소비자가 져야 한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분양 주택공급사업자는 분양 계약 체결시 주택가격의 20% 한도 내에서 계약금을 받을 수 있다. 이후 건축공정에 따라 2회 중도금을 받고 준공시점(사용검사 승인)에 나머지 잔금 20%를 받는다. 분양과 건설 과정에서 건설사가 비용의 대부분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은 공급과잉은 물론 부실시공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놓기만 하면 아파트값이 오르던 고도성장기에는 소비자도 이 같은 구조에 대한 거부감도 덜했다. 입주 시점의 아파트 가격은 분양가를 웃도는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의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선분양제는 자산 증식의 도구로 유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분양 증가와 함께 공급과잉 우려가 커진 데다 대량 건설이 가능한 택지 공급도 이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상태다.

지난해 8월 3만1000여 가구 수준으로 감소했던 주택 미분양은 9월 현재 6만700가구로 2배 가까이 불어났다. 미분양이 늘어나는 상황에도 공급은 사상 최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주택 인허가건수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76만5000여 건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9월까지 51만9000여 건으로 전년 동기 수준을 소폭 밑돌 뿐이다. 정부가 적정 수준으로 평가하는 연간 주택 공급량은 39만가구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이전 인허가, 분양 실적을 볼 때) 앞으로 연 70만~80만 가구의 입주가 기다리고 있다"며 "선분양이 (필요 이상) 수요를 부풀리고 가계 부채를 늘리는 역할만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정부가 주택을 산업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며 "산업 중심·공급 위주의 선분양제도에 수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 아닌 주거안정으로"=산업적 관점의 접근은 여전히 후분양제가 넘어야 할 산이다. 앞서 참여정부의 후분양제 도입 실험이 중도 폐기된 것도 주택공급을 주거안정이 아닌 건설산업의 일부로 인식한 탓이 크다.

참여정부는 2003년 11월 단계별 후분양제 도입을 발표했다. 2007년 공공부문부터 순차적으로 후분양제를 의무화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2007년 경기상황을 이유로 이행이 1년 미뤄지더니 이어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계획 자체가 아예 폐기 처분됐다.


당시 후분양제 이행이 연기 또는 폐기된 이유는 표면상 분양가 상승이었다. 주택건설에 필요한 각종 금융비용이 더해지며 분양가가 상승해 서민의 주택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경기 불황과 잇따른 규제 정책으로 주택 구매심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는 이유가 더 컸다. 주택경기가 더 꺾이면 큰일이 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발이 잡혔다.

이후 일부 민간 분양에서 후분양 대출보증제를 활용, 후분양 아파트를 선보이고는 있지만 공급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2013년 9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후분양 대출보증제를 도입한 이후 2년여간 이 제도를 활용한 후분양 주택 공급은 1572가구에 불과하다.

주택 대량 공급의 필요성이 사라진 지금,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공급 △부실시공과 같은 아파트 질의 하락 △분양권 전매 활성화를 통한 시장 교란 △주택건설산업의 경쟁력 약화 등 선분양제의 폐해를 계속 묵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다시 후분양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인호 KDI연구위원은 "주택공급이 부족할 때는 공급을 원활히 한다는 차원에서 선분양이 일정 수준 기여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상황에서는 투기적 요소를 제거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후분양제로 가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송 위원은 "무엇보다 (투기세력을 배제하고) 실수요자 위주로 부동산시장을 재정립하는 게 중요하다"며 "전매제한 강화와 함께 후분양제 도입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조명래 교수는 "선분양제는 고도성장기 공급 편의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며 "부동산 투기, 주택의 질 저하, 공급과잉, 주택시장 경기 변동성 확대 등 현 주택시장의 해묵은 문제점들도 선분양제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후분양제를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며 "산업 구조조정과 같은 반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정비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후분양으로 갈 수 있도록 금융을 비롯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일부 대형업체의 주택시장 독과점으로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을 제약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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