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사라지는 것'을 찾아 떠난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6.11.19 07:02

<44> 죽방렴을 찾아가는 여행

편집자주 |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창선교에서 바라본 지족해협의 죽방렴/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국토의 남쪽을 달리다 하동을 지나 계속 내려가다 보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큰 섬인 남해도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다리를 통해 육지와 연결돼 있는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남해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섬을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들의 자부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보석 같은 풍경을 곳곳에 품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기 때문이다.

남해도를 가로질러 창선 쪽으로 달리다보면 물살 빠르기로 유명한 지족해협을 만난다. 거기에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연결해주는 창선교가 있고, 입간판에서 죽방렴의 본고장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지족해협 청정해역의 명품-원시어업 남해 죽방렴멸치'

현존하는 가장 원시적 형태의 어로포획방식이라 부르는 죽방렴은 원시어업이라기보다는 자연친화적 첨단 어업이라 부르는 게 적당할 것 같다. 돌로 담을 쌓아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서해의 '독살'과 함께, 자연을 활용하려는 지혜와 노력이 가장 많이 투영된 어로법이기 때문이다.

죽방렴은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簾) 고기를 잡는다(防)는 뜻으로 ‘대나무 어살’ 또는 ‘대나무 어사리’라고도 불렀다. 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빠르며 수심이 비교적 얕은 곳에 설치한다. 좁은 물목의 조류가 흘러 들어오는 쪽을 향해 길이 10미터 정도의 참나무 말목을 V자 모양으로 벌려 일정하게 박고, 말목과 말목 사이에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서 울타리를 만든다. 그리고 통 안에 그물을 엮어 넣으면 밀물 때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는 미로로 된 함정(임통)에 빠져 썰물 때가 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물고기는 후진을 할 줄 모르고 물살은 세니, 들어오는 길에 생각이 바뀐다 해도 다시 나갈 방법은 없다. 임통은 밀물 때는 열리고 썰물 때는 닫힌다.

죽방렴을 관리하는 주인들은 하루 두세 차례 물때에 맞춰 후릿그물이나 뜰채로 물고기들은 건져 올린다. 고기잡이는 3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며, 5월에서 8월 사이에 멸치와 갈치를 비롯해 학꽁치·장어·도다리·농어·감성돔·숭어·보리새우 등이 주로 잡힌다. 고기잡이를 하지 않는 1~2월에는 임통만 빼서 말려둔다.

가까이에서 본 죽방렴. 둥근 부분이 물고기를 가두는 임통이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이렇게 잡는 물고기 중에는 멸치가 80% 정도를 차지한다. 임통에서 건진 멸치는 대부분 즉시 육지로 운반해서 솥에 삶아 말린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스트레스를 덜 받아 맛이 좋다고 한다. 또 포획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나지 않기 때문에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다. '죽방멸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물로 잡은 멸치보다 최소 두 배에서 수십 배의 가격으로 팔려나간다.


죽방렴 어업은 선조들의 지혜와 여유를 엿볼 수 있는 자연친화 어로법이다. 바다 위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있다가, 들어오는 물고기는 맞아들이고 지나가는 물고기는 갈 길을 가도록 놓아둔다. 놓친 물고기를 아쉬워하거나 더 많이 잡겠다고 아등바등 하는 법도 없다. 바다 밑까지 긁는 기계식 어로처럼 무지비한 싹쓸이를 꿈꾸지 않는다. 자연도 살리고 인간도 살자는 상생의 어로다.

죽방렴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고려시대부터라고도 하고 5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도 하는데 문헌상에는 조선조(1496년)부터 나타난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죽방렴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큰 조수간만의 차와 빠른 물살이 필수조건이며 수심 역시 적당해야 한다.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는 지족해협에는 아직 꽤 여러 채의 죽방렴이 남아 있다.

죽방렴 역시 사라지고 있는 과거의 유물이다. 큰 배를 타고 대양을 누비는 어로법의 발달, 연안의 어업자원 감소, 관리 노동력의 부재 등은 죽방렴을 석양 아래 세워놓았다. 아마도 새로운 죽방렴의 설치가 끊길 날이 그리 멀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임통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죽방렴의 이름을, 가슴에서마저 지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의 목록을 정해놓고 찾아다니는 것이야말로 테마여행의 참맛이라고 할 수 있다. 옛사람들의 지혜를 만나 시간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다보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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