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울타리보다도 더 높고 안전한 울타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중에서)
서울에서 KTX로 3시간을 달린 뒤 순천역에 도착해 1시간 30분 차를 타면 도착하는 '작은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 우주센터를 찾은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함께 둘러보는 곳이다. 이 섬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역사를 가진 공간이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내보이고 있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이다. 아직도 수백 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살아가는 생활 공간이기도 하다. 소록도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은 경고 문구가 적힌 안내판으로 구분된다.
'신의 저주'라 불리기까지 했던, 몸이 썩어나가는 병. 성경에서는 '문둥병'이라 하여 인간이 가진 온갖 병 가운데 가장 끔찍하게 묘사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20세기에 끝난 병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지금도 매년 국내에서만 수백 명의 환자가 발병하는 현재진행형 병이다.
그런데 어떻게 소록도를 관광객들이 드나들 수 있을까. 한센병은 나균에 의한 '전염병'이지만, 환자와의 일상적인 접촉이나 같은 공간 사용, 모기 물림 등을 통해서는 전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센인 거주지에 간다고 해서 감염되는 병이 아니라는 의미다.
1994년 일반인을 향해 문을 연 뒤, 소록도는 병원이나 중앙공원 등 일부 지역을 '일반인 개방 구역'으로 분류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특히 올해는 소록도 병원이 문을 연 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 이전보다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소록도는 1916년 2월 24일, 일제에 의해 '소록도자혜의원'이라는 이름의 병원이 설립되며 한센인 격리지역이 됐다. 일제는 한센병 환자가 국가의 위상을 해친다고 판단, 환자들을 강제로 소록도에 몰아넣고 강도 높은 노역을 시키고 단종 및 낙태수술을 감행하는 등 반인권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에도 한센병에 대한 인식은 나아지지 않았고, 차별과 박해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센병을 관리하는 약물 등이 개발되면서 6000여 명에 달했던 한센인은 500여 명으로 줄었고, 격리된 환자 수 또한 급격히 줄어 현재는 앞서 격리된 환자들 외에 추가 입소 환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분리돼 있었지만 개방 구역 너머, 도로 위를 지나다니는 한센인 환자들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병원이 세워진 지 100년이 지난 지금은 평화로운 섬이 되었지만, 남성들에게 단종 수술을 강행하고 임신한 여성의 아이를 강제로 지우는 등 국가 폭력의 한은 여전히 곳곳에 서려있다.
그럼에도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와 함께,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벽화를 통해 한센병 희생자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작은 미술관을 통해 소록도의 정체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한센인들이 보여주는 삶을 향한 의지가 이곳을 찾는 모두에게 따스한 온기로 전달되는 곳. 소록도는 그런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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