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오늘…거리에 버려진 자들의 보금자리 생기다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 2016.11.15 05:58

1300원으로 세운 사랑의 집…소외이웃 4000명 보금자리로

충북 음성군에 위치한 꽃동네 전경. /사진=나무위키


1976년 충북 음성 작은 시골마을. 32살의 젊은 신부는 음성 금왕읍 무극 천주교회의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온갖 어려운 이웃들을 목격한 그는 이곳에서 가난하고 힘든 자들 위해 봉사하겠노라 마음을 굳혔다.

그러던 중 그는 무극천 다리 밑에서 그의 운명을 바꿀 사람을 만난다. 그는 최귀동 할아버지였다. 어릴적 부유하게 자란 최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가족은 물론 모든 재산을 잃었다. 자신조차 끼니를 제대로 때울 수 없는 처지었지만 그는 다른 굶주린 사람들에게 자신이 동냥한 먹을거리를 나눠주며 함께 생활했다.

이 모습을 본 젊은 신부는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을 만들기로 한다. 40년 전 오늘(1976년 11월15일)은 오웅진 신부가 장애인, 노숙인 등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보금자리인 '꽃동네'를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한 날이다.

/사진=꽃동네 홈페이지
오웅진 신부는 최 할아버지가 자신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그는 당시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는 가르침을 얻는다. 그는 이 깨달음을 바로 실천에 옮긴다.

그가 당시 가진 돈은 1300원. 그는 이 돈으로 무극리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칸, 부엌 다섯칸 짜리 '사랑의 집'을 지었다. 훗날 꽃동네의 전신이 탄생한 것이다.


이 사랑의 집은 점점 부지를 넓혀 장애인과 소외받은 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로 커졌다. 현재는 음성과 경기도 가평 꽃동네의 입양기관과 아동보육 시설, 노숙인 시설, 장애인 시설, 노인요양원 등에서 40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수도자 350여명과 직원 800여명이 수용자들을 돌보고 있다.

꽃동네는 봉사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일반인 등 연간 30만명에 가까운 국내외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곳을 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을 선포하고 일치와 성덕,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건설하는 사명에 열정을 지닌 이들이 돼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꽃동네를 둘러싼 비판 여론도 있다. 전국에 1322만m²(400만평) 넘는 부지를 보유하는 등 꽃동네 규모가 '거대화'되면서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오 신부는 이 과정에서 2003년 부동산실명제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또한 꽃동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는 꽃동네가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주체가 아닌 수용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또한 수용시설에서 장애인들의 생활공간이 협소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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