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작품 전시의 ‘절대적인 조건’들이 있지요. 전시는 제대로 된 조명이 필요하고, 작품 포장도 항상 깔끔히 해야 하고, 그림을 옮기기 위해서 꼭 차를 대절해 조심스레 옮겨야 하는 식이지요. '천 그림'을 그리면, 그런 조건을 맞추기 위해 경직됐던 사고에서 풀려난 기분이 들어요."
현대 미술가 이우성 작가(33)는 캔버스 대신 동대문 시장에서 사온 천 위에 그림을 그린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평면전공 전문사 과정을 마친 그는 전통적이면서 절대적인 회화 전시의 '조건'을 비틀어 눈길을 끈다. 청년 작가의 생활에 걸맞은 제작, 전시 방식으로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한다. 걸개그림으로, 이동할 때 이 그림을 접고 전시할 때 펼친다. 고정된 작업실 없이, 짧게는 몇 개월 만에 작업 공간을 옮기는 레지던시 생활을 하는 그가 착안한 '천 그림'이다.
"경제적으로 무리해서 작업실을 구해 200호짜리 캔버스 위에 유화를 그려 전시에 출품할 수도 있겠지요. 그보다는 제가 처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의 회화는 전시장에서도 선보이지만, 1980년대 시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그림처럼 거리에 설치되고 바람에 나부낀다.
"천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운동권 그림'같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당대 필요했던 그 사조를 이어간다기보다, 제 작업이 사람과 만나는 방식에서 그 같은 분위기를 느끼셨던 것 같아요. 바깥에 거는 순간 '공공성'이 생겨요. 특수한 계층을 위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그는 올해 뉴질랜드에서 3개월간 레지던시 생활을 하며 작업을 했다. 그곳에서 보고 만난 것들, 생각한 것을 천 위에 그렸다. 붉은색 바탕칠을 한 화면에서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편 그림, '알바트로스'가 그 같은 그림이다. 그는 지진으로 공터가 생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의 빈 벽에 '알바트로스'를 걸며 현지인들과 만났다. 그의 최근 작업은 개인적 체험, 주변인들과 겪은 일상, 잊혔다 문득 떠오른 생각 등 진솔한 개인사와 얽힌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현대 미술가 오석근 작가는 이우성 작가의 그림에 대해 "어딘지 가벼워 보이지만, 계속해서 생각을 이끄는 회화를 걸개그림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바트로스'는 지금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컬렉션의 단체전, '트윈 픽스'(Twin Peaks) 전에서 12월 10일까지 선보인다. 이와 함께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이우성이 '달, 쟁반같이 둥근 달'전에 출품한 '접혔다 펼쳐지는 그림들' 연작을 11월 30일까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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