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차라리 '창조경제' 간판을 떼라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 2016.11.09 03:00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온 국정과제들까지 모두 비리로 낙인찍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개입 사태에 사과하면서 한 말이다. “일부 잘못이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성장동력만큼은 꺼뜨리지 말아달라”고도 호소했다.

아마도 ‘창조경제’ 정책을 두고 한 말일 게다.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를 상징하는 1순위 국정과제다. 열일 제치고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꼬박꼬박 참석했을 정도로 대통령의 애착도 남달랐다. 이 때문에 ‘최순실 게이트’의 불똥이 창조경제 정책 전반으로 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대통령 본인에겐 뼈아플 듯 싶다.

용어의 모호성 때문에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정권 초기 ‘창조경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창업→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창업 생태계 기반 조성 사업과 중소기업 재도전 프로그램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창업가들을 옥죄였던 수많은 규제들이 풀리면서 적잖은 호응을 얻었다.

평가가 엇갈리기 시작한 건 집권 중반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와 ‘문화융합창조벨트’ 사업으로 급선회하면서부터다. 혁신센터의 원래 취지는 대기업-지자체-중앙정부간 협업으로 창업 생태계 거점을 마련해 전국적 창업 열기를 잇고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혁신센터가 창업 생태계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국가기획형 관제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형 이벤트 행사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쪼이기’식 단기 성과에 급급했고, ‘모양새 갖추기’식 톱다운(top-down) 정책들이 쏟아졌다.

그러던 차에 터져나온 최순실 게이트는 창조경제 기반 자체를 흔들리는 계기가 됐다. 창조경제타운(온라인 포털)과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장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최순실씨 개입 의혹은 차치하고 창조경제의 뼈대인 ‘민·관 협업 체계’의 정당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전경련 소속 주요 대기업들이 17개 혁신센터 전담기업으로도 참여해 투자펀드 등을 분담했다. 올해 설립된 지능정보기술연구원에도 7개 대기업이 30억원씩 출자를 요구받았다. ‘민간 주도’라는 명분을 앞세운 ‘대기업 팔 비틀기’ 관행이 창조경제 사업 전반에 횡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창조경제 정책 기조에 동감한 민간기업들의 자발적인 투자”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청와대가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정에서 보여준 강압적 행태나 재계 총수의 경영권까지 간섭한 정황들을 보면 정부 해명을 곧이들을 사람은 없다. 공무원들 표현을 빌어 ‘VIP(대통령) 1호 관심사항’에 대한 요청을 거역할 기업이 과연 있었을까. 비정상적인 협업모델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안타까운 건 최순실 게이트가 가까스로 피어나기 시작한 창업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점이다. 한순간에 청년들의 열망을 꺾은 장본인은 대통령 자신이다. 사실 ‘창조경제’란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창업 생태계 조성 사업은 박근혜 정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반드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수명을 다한 대기업·굴뚝산업 위주의 대한민국 경제체질을 바꿀 최적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술 혁신기업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 트렌드와도 부합된다.

지금 필요한 건 막판 대통령 치적 쌓기가 아니라 근본적인 정책 재점검이다. 창업가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보여주기식’ 전시관이 아닌 그들의 혁신기술과 아이디어가 스스로 꽃필 수 있는 자생적 창업 네트워크다. 그간 정책 추진과정에서의 경험과 긍정적인 성과는 버리지 말되, 최순실 게이트에 얼룩진 ‘창조경제’ 간판은 고집할수록 짐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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