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반쪽 예산심사

머니투데이 심재현 진상현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 2016.11.02 08:55

[the300]종합

증액 권한 없는 국회 예산심의권…최순실 예산 낳았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시작되면서 국회의 예산증액 권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의회의 견제와 감독 기능이 중요한 대통령제 체제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예산심의 권한이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깎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 반쪽 권한에 그친다는 점에서다. 국회의 예산심사권 약화가 정부의 예산편성권 강화로 이어지면서 올 예산정국의 핵심으로 떠오른 '최순실 예산 사태'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견제·감시 말하지만…예산편성권>예산심의권 = 1일 복수의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은 1% 안팎의 예산을 삭감하고 증액하는 수준에서 심사와 의결이 이뤄진다. 예산이 일방적으로 삭감되거나 증액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산이 조정되는 비율도 전체 예산 규모에 비하면 미미하다. 국회의 예산심사가 수박 겉핥기라는 지적이 반복되는 이유다.

속사정은 헌법상 국회의 예산심사 범위에 있다. 현행 헌법에서 국회는 예산 삭감 권한만 가질 뿐 증액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삭감한 예산을 다른 사업비로 조정하거나 새로운 사업에 배정하는 것도 기재부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회의 예산심의가 정부를 견제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꼽히지만 실상은 기재부가 허락한 범위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실무적으로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국회의원의 감액 요구만 검토하고 증액 요구에 대한 검토와 예산안 수정은 모두 기재부 예산실에서 전담한다. 예산 시즌이 되면 기재부 예산실이 통째로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여의도 국회로 이사를 온다. 국회 한 관계자는 "정부의 예산편성권이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압도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 예산전용·사고이월…심사 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 국회의 예산심사권이 삭감심사로 제한된 것은 제헌 당시부터다. 제헌헌법기초전문위원을 지낸 유진오 박사의 헌법해의와 헌법제정회의록에는 국회의 권한을 삭감으로 제한하는 동시에 정부도 국회의 의결 없이는 예산을 함부로 지출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국회와 정부의 견제와 감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삭감과 증액 권한을 따로 떼어놨다는 얘기다.

문제는 제헌 당시의 취지와 다른 예산관계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편의적인 수단이 대거 도입됐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국가재정법 등 예산관계법으로 가능해진 예산전용과 사고이월을 대표적인 정부 편의수단으로 꼽는다. 일단 어떻게든 예산을 확보하기만 하면 국회의 의결 없이도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생기면서 국회와 정부의 예산 균형이 무너졌다.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모델인 미국의 경우 예산편성권을 의회가 행사한다. 정부가 제출하는 예산안은 의회의 예산심의에서 참고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프랑스도 사업별 지출규모를 변경하지 않는 수준에서 세부 예산을 조정할 권한을 의회에 보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19대 국회 당시 국회의 예산심의권 강화 문제가 공론화된 적이 있다. 김태호 새누리당 전 최고위원은 2014년 6월 당대표 경선에서 예산편성권 국회 이관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전 최고위원은 "대통령제에서 예산편성권을 행정부가 갖는 것은 정부 주도로 고도 경제성장을 추구하던 개발도상국 시대의 유산"이라며 "우리나라는 행정부가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다 보니 삼권분립이 성숙되지 못하고 행정부의 권력이 비대해졌다"고 주장했다.

2009년 8월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의가 제출한 개헌보고서에는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해 국회의 예산편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소수안이 포함되기도 했다.

◇ 선심성 예산 우려…국회 전문성 부족 지적도 = 반론도 있다. 국회에 예산편성권을 부여할 경우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통제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 우려가 적잖다. 실제로 국회의 예산심사 기능은 예산정국 막바지에 국회에서 요구하는 증액사업이 많아질수록 약해진다. 국회의원이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 위해 정부에 사정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얘기다.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교수 재직 당시 발간한 저서 '헌법학원론'에 국회의 예산증액권 제한과 관련, "정치적 이익을 고려해 행하는 선심성 증액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예산심의 전 예산 관련 자료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이 많지 않다는 현실론도 나온다. 국회 전문위원실이나 예산정책처도 기재부 도움 없이는 예산을 독자적으로 검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대 국회 임기를 마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예산 심사"라며 "국회의 예산 관련 조직을 대폭 강화하기 전에는 의원 개개인이 예산 관련 정책 역량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헌 안해도 국회 예산증액 권한 인정 가능"



정부 예산을 증액할 경우 기획재정부의 동의를 거치도록 한 헌법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국회의 자율적인 예산조정권을 일부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의 예산증액 동의권에 관한 뚜렷한 규정이 없는 만큼 삼권분립의 취지에 맞춘 유연한 헌법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법령 중 정부의 예산증액 동의권을 규정한 법은 헌법밖에 없다. 헌법 57조(국회는 정부의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가 정부의 예산증액 동의권에 대한 유일한 근거다.

정부는 이 규정에 따라 예산안을 제출할 때 각 부처별로 '항' 단위까지 예산을 적시한다. '항'의 하위단위는 부처별 세입·세출 예산안 각목 명세서에 따로 기재한다.

국회의 예산조정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주목하는 부분이 이 지점이다. 헌법상 정부의 예산증액 동의권이 '각 항'으로 규정된 만큼 하위단위의 세부예산에서는 국회의 자율적인 예산조정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

헌법 규정과 같은 취지에서 제정된 국가재정법상 증액동의 관련 조항에서도 기금운용계획안을 변경할 때 정부 동의를 거쳐야 할 주요항목의 단위를 '장·관·항'으로만 규정하고 세부항목인 세항·목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이 없다.

정재룡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에서 각 항의 금액을 늘릴 경우에는 헌법에 따라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편의적 예산집행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세부 항목에 대해서는 현행 헌법에서도 국회가 예산심사과정에서 감액한 예산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맹탕' 국회 예산심사, 전문성 강화하려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2016.10.2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회의 예산 심사 역량을 높이는 방안으로는 증액 권한을 부여하는 것 외에 전문성을 갖춘 각 상임위의 예산심사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과 현재 특위 형태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일반 상임위화하는 방안이 주로 거론된다.

1일 국회에 따르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11일 국회 상임위원회가 소관 부처 예산을 삭감한 금액 내에서 세출 예산의 각 항목들을 증액한 경우에는 예결특위에서 이를 삭감하려면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예결특위는 소관 상임위원회의 예비 심사 내용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심사과정에서는 증액 항목에 대해선 상임위원회의 심사내용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예결특위가 삭감한 세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시키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에는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증액 예산에 대해선 별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각 상임위의 증액 결과를 그대로 인정할 경우 대폭적인 예산 증가가 불가피한 점 등이 고려됐다.

이에 따라 상임위 예비심사에선 예산이 대폭 증액됐다가 예결위에서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심사가 진행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왔다. 이는 모든 부처의 예산을 다뤄야 하는 예결특위보다 더 집중적으로 소관 부처의 예산안을 심의할 수 있는 각 상임위의 전문성이 고려되지 않은 구조라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개정안에서는 상임위 차원의 무분별한 증액을 막기 위해 삭감액 이하 증액일때 만 상임위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장치를 넣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증액 항목과 감액 항목이 모두 소관 상임위 동의가 없으면 조정이 불가능해져 예산심사를 본업으로 하는 예결특위의 권한과 위상이 크게 약화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한계가 있다. 예결특위는 1년에 50명씩 4년 임기동안 최대 200명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할 수 있지만 상임위의 예산심사권이 강화될 경우 국토위, 교문위 등 예산 사업이 많은 상임위와 그렇지 않은 상임위간의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유 의원은 지난 19대 국회 때도 같은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런 우려로 인해 충분한 논의가 되지 못한 채 임기 만료 폐기됐다. 개헌 등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 지형 변화가 시도되는 20대 국회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국회의 예산심사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다른 방안으로는 예결특위 일반 상임위화가 거론된다. 현재 겸임 상임위로 운영되는 예결위를 일반 상임위화 해서 정부 예산 편성 단계부터 1년 내내 예산 업무에 집중도록 하도록 하는 형태다. 이 경우엔 반대로 예결특위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예산 접근이 어려워지는 단점이 있다. 일반 상임위가 되면 위원수도 다른 상임위와 같이 20-30명으로 줄어들고 임기도 2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예결위 입성을 위한 의원들간의 경쟁도 더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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