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맘대로 하세요"라던 대통령, 끝내…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16.11.02 06:00

[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야당 대권주자 시라크 '총리' 앉힌 미테랑, 재집권 성공…거국내각, 야당에 '독이 든 성배'

# 1986년 3월16일, 프랑스 중간선거에서 국민들은 집권여당 사회당을 심판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에서 물가가 급등하고 실업률이 치솟은 결과였다. 사회당은 의회 다수당 지위를 우파정당인 공화국연합(RPR)에 빼았겼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다수당에서 총리를 지명하고, 총리와 권한을 나눠 갖는 일종의 '분권형 책임총리제'다. 그러다보니 야당에서 총리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를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 즉 '동거정부'라 부른다.

야당 총리를 뽑아야 하는 미테랑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선택지는 2가지였다. 한명은 온건 보수 성향의 지스카르 데스탱, 또 한명은 극우 보수인 자크 시라크 였다. 당시 파리시장이었던 시라크는 2년 뒤 대선에서 미테랑의 연임을 저지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었다. 여기서 미테랑은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눈부신 결단을 내린다. 자신과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가진 '숙적' 시라크를 총리에 전격 지명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2년 뒤 1988년 대선에서 미테랑은 시라크를 물리치고 재집권에 성공한다.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도 여당인 사회당이 다수당 지위를 탈환했다. 시라크는 대통령에 오르긴 커녕 총리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그리곤 대통령이 되기까지 7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미테랑은 어떻게 총선 참패를 딛고, '정적'인 시라크를 총리에 앉히고도 재집권을 이뤄냈을까?

미테랑은 시라크에게 내치를 완전히 맡겼다. 시라크는 미테랑의 국유화 정책을 모조리 뒤집고 65개 국영기업을 도로 민영화했다. 세금을 깎고, 이민도 규제했다. 그런데도 사회주의자 미테랑은 시라크가 마음껏 날뛰도록 가만 내버려뒀다. 그동안 자신은 역사적인 독·불 합동부대 창설에 합의하는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눈에 띄는 업적들을 쌓는 데 주력했다.

2년 뒤 대선이 다가왔을 때 실업률은 더 높아졌고 이민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모든 화살이 시라크에게 쏠렸다. 시라크에게 더 큰 문제는 더 이상 대선에서 내세울 새로운 공약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시라크는 그동안 자신이 약속해 온 정책들을 2년 동안 모두 실현했고, 끝내 실패했다. 그에게 총리직은 '독이 든 성배'였다.


'거국내각'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창한 뒤 여야를 막론하고 백가쟁명식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거국내각을 전격 수용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했지만, 되레 야권이 유보적으로 나오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대선에서의 유불리만 따지면 거국내각은 역설적으로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하다. 이미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정권에 야당을 끌어들여 책임을 공유하게 만들면 여당으로서 나쁠 게 없다. 야당이 국정에 일부나마 참여해 증세 등 자신들의 핵심 정책을 실현한다면 이는 대선에선 더 이상 쓸모없는 낡은 아젠다가 돼 버린다. '정권교체'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감도 1년여간 야당이 국정에 참여하는 동안 사그라든다. "야당이 해도 별 다를 게 없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야당의 집권 가능성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당장 거국내각이 꾸려진다 해도 내년 대선까지 남은 1년1개월여는 새로운 국정기조를 세우고 그에 따른 정책을 시행해 성과를 거두기에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게다가 경기는 이미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선에서 경기침체에 대한 책임은 거국내각에 참여한 여야가 함께 질 수 밖에 없다. 권한은 작고 책임은 큰 행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긴 쉽지 않다.

결국 거국내각은 야당에겐 '독이 든 성배'요, 여당에겐 '대선을 위한 승부수'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 등 야권의 대권주자들이 거국내각을 촉구한 건 조국을 위한 '충정'의 발로일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박 대통령도 굳이 거국내각을 피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는 "자칫 야당내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야당도 과거 10년간의 수권 경험을 가진 만큼 불안해 할 필요 없다. 또 야당의 요구대로 대통령이 탈당한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민심은 과감한 결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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