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최순실보다 더 나쁜 사람들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 2016.11.02 05:31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하다.’

유명한 광고 문구를 패러디한 이 문장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 걸맞지 않나 싶다. 더 놀랄 일이 남았을까. 아니 이제부터 시작인가.

지난달 28일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영란법)이 발효된 지 한 달 됐다. 한 국립대는 교수가 반경 몇 킬로 이상 나가는 경우 ‘외근’으로 간주해 휴가계를 내도록 했다. 이 학교 교수는 “앞으로 정부 부처는 자문 따위를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는 월 3회 이상 외부 활동을 못 하게 한 사문화된 교수지침을 ‘영란법’ 덕분에 시행할 수 있게 됐다. 한 법학 교수는 “매주 금요일은 신고의 날”이라며 “외부 활동이 기록으로 남아 성향 관리까지 당하게 생겼고, 지방 사립대에서 이미 조짐이 보인다”고 개탄했다.

영란법이 교수의 인권이나 개인정보 보호는커녕 제자로부터 커피 한잔도 못 받게 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시절이다. 그래도 국민은 최선을 다해 지키려 애쓴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영란은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가 됐다. 더 센 이름 ‘순실’이 등장해서다. 청소년들마저 비웃는다. “말 한 마리쯤은 사줘야 자식 사랑이지.” “진짜 잡아야 할 도둑이 영란법으로 잡힌대? 힘센 ‘순실법’으로 하지?”

그의 대단한 모정은 확인됐다. 교육부 장관을 들먹이며 교사를 겁박했다. 대회 출전 공문도 없이 무단결석했음에도 출석처리가 됐다는 정황이 추가로 나오고 있다. 드러난 모양새만 보면 권력을 등에 업은 ‘치맛바람’ 외에도 기업 돈을 갈취하고 나랏돈을 훔치려 하고, 국정을 주무른 정치 공작 세력의 두목격이다.

그런데 과연 단국대 청강생 출신의 ‘어머니’ 혼자 이 판을 만들었을까. 크게 한탕 해 먹기 위해 시나리오를 짜고 여러 심복에게 역할을 맡겨 시쳇말로 ‘공사’를 진행했다면 한패가 된 내부 조력자는 없을까.


부처에서 청와대로 파견 나간 공무원 대다수는 “작은 부탁마저도 거절해서 사람 관계가 파탄 날 지경”이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청와대 근무는 다른 몸가짐일 수밖에 없다. 외부 만남도 줄이고, 개인 발언은 극도로 아낀다. 그런데 비밀문서를 외부로 유출하고 심지어 ‘빨간 펜’을 받아 돌아오는 정황이라니. 안종범 전 수석은 물론 정호성 전 비서관을 포함한 ‘십상시’ 인물들과 태블릿PC 개통자로 알려진 김한수 행정관 등을 공무원으로 부르는 게 공무원 전체를 모욕하는 일인 이유다. 지청장까지 한 우병우 전 수석의 행보는 더욱 기가 차다. 관료가 지녀야 할 책임을 눈곱만큼이라도 지키려 한 조심성이 있었다면 그 많은 부패의 연결고리에 이름이 오를 리 없다.

고백 하나 해야겠다. “홈페이지 개발 같은 작은 일조차 특정 업체를 봐주라는 지시가 내려올 정도였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손사래를 쳤다. 폭력적인 인사 전횡이 두려워서다. 부처 장관들이 대통령을 독대하고, 정책 현안을 설명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쌓여있는 서류’ 얘기에 “비서실장, 수석들은 뭐한대.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사람 하나 없느냐”며 꼬집었지만 “수석들도 대면 보고를 못하는데 무슨”이라는 한숨만 돌아왔다. 그렇게 눈감았다.

최순실 게이트는 딱 반이다. 그가 ‘내시부’를 갖고 논 것과 내시부가 그를 써먹은 것과 양 집단이 '짜고 친'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최순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국민을 꼭두각시로 만드는데 위스콘신대학이나 국내 명문대를 나온 정치 모리배들이,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그들을 키운 새누리당이 그리고 대통령이 얼마나 어떻게 관계했는지가 핵심 아니겠나.

대한민국이 부패 공화국이 되고,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않는 극도의 불신 사회가 된 것은 결코 국민 탓이 아니다. 나라 꼴이 이 지경인데도 영란법에 비추어 일거수일투족을 스스로 점검하는 국민의 인내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베스트 클릭

  1. 1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
  2. 2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자녀장려금 신청하세요
  3. 3 "욕하고 때리고, 다른 여자까지…" 프로야구 선수 폭로글 또 터졌다
  4. 4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5. 5 "6000만원 부족해서 못 가" 한소희, 프랑스 미대 준비는 맞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