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 거리상담]가출 2년째…쉼터가 집이 되다

뉴스1 제공  | 2016.10.29 07:15

청소년 10명 중 7명 가출 이유는 ' 가족갈등'
24시간 카페·쪽방·가출팸으로 지내다 범죄자되기도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입구에서 열린 '찾아가는 위기청소년 거리상담'/뉴스1.© News1

"대부분은 가정폭력이죠. 엄마가 툭하면 때리고, 칼로 죽이려고 한 적도 있대요. 무서워서 집을 나왔다는데, 엄마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26일 저녁 청소년의 메카라 불리는 서울 관악구 신림역 입구에서 열린 '찾아가는 위기청소년 거리상담'에서 만난 가출청소년 김가은씨(가명·20)가 말했다. 2년 전 충청도 고향 집을 나온 뒤 지금까지 마주친 가출청소년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참이었다. 김씨는 이들에 대해 "집이든 학교든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한해 가출하는 아이들만 어림잡아 15만~20만명으로 추산된다. 갈 곳 없는 청소년은 조건만남, 성매매 알선, 폭행, 사기 등 뉴스에 오르내리는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뉴스1이 청소년쉼터 주간(24~30일)을 맞아 진행된 '찾아가는 위기청소년 거리상담'을 찾아가 봤다.

◇가출 아닌 탈출하는 아이들

이날 오후 6시 해가 지자 신림역에는 앳된 얼굴의 청소년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동전 노래방, 뽑기샵, 오락실 등 각종 놀거리가 즐비한 신림역은 청소년들의 제1 놀이터다.
금천청소년쉼터 직원들은 지나는 아이들을 간이 상담소로 불러모았다. 책상 위에 올려진 빵과 과자를 눈치챈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설문지를 작성하곤 재빠르게 사려졌다. 그 뒤에 김씨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김씨가 처음 집을 나온 건 2년 전 고2 때였다. 초등학교 때 이혼한 엄마는 떠났고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한다며 할머니에게 남매를 부탁했다. "저는 요리나 제빵이 하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여자니까 사무직을 하라고 고집했어요. 집에서 대학 등록금을 대 줄 것도 아니고, 제빵하는데 반드시 대학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도요."

당장 진로를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반항의 의미로 첫 가출을 감행했다. 친구 집에서 머문 지 일주일, 가출신고가 됐다며 경찰이 찾아오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다툼은 계속됐고 집에는 이를 중재할 어른이 없었다. 오빠는 여동생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시 집을 나와야만 했다"고 김씨는 또박또박 말했다.

금천청소년쉼터 최은영 팀장은 가출하는 대다수 청소년이 김씨처럼 가정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진로나 성적을 두고 갈등을 겪기도 하고 심하게는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떠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라고 말한다. 2015년 청소년통계에서도 가출원인은 '부모님 등 가족 간의 갈등(67.8%)'이 압도적 1위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9.5%)' '가출에 대한 호기심(6.1%)'은 일부에 불과하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가출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가정의 문제가 크다"며 이날 최 팀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상상 밖이었다. 며칠 전 재혼한 아버지가 친딸을 키우지 못하겠다며 아이를 쉼터에 데려왔다고 한다. 그 딸은 만 11세,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는 "도벽, 야뇨증은 불안해서 생긴 병인데 부모들은 아이를 탓하며 못 키우겠다고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가 버젓이 살아있으니 갈 곳 없는 이 아이는 결국 쉼터에 머물기로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종종 이런 식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초등학생이 쉼터로 들어온다는 것.

한번은 대기업 부장이라는 아버지가 가출한 여고생 딸을 찾아 쉼터에 왔다고 한다. "아빠가 내 얘기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딸에게 이 아버지는 "그런 고민 따위는 시간 낭비"라며 "2~3등급인 모의고사를 1등급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날 최 팀장은 이 아빠를 상대로 6시간 상담을 했지만 조금도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갈 곳없는 청소년, 가출팸에 의지

거리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직원들은 '아웃리치(outreach)'를 나섰다. 노래방, 모텔, 오락실, 뽑기샵, 공중화장실, 도림천 등 신림 일대 청소년들이 있을 만한 곳을 돌며 쉼터 연락처가 적힌 홍보물을 주며 쉼터를 알리는 것이다.

쉽지는 않았다. 업주들은 쉼터직원들이 가게에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청소년 없어요", "우린 그런 거 관심 없어요. 나가세요"라는 냉담한 반응에 아이들에게는 말도 못 건네고 "한 번만 읽어봐 주세요"라며 홍보물을 두고 얼른 자리를 떠났다. 최 팀장은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최후의 사회안전망으로 쉼터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고 애써 웃어 보였다.

과거에는 심야에 어두운 다리 아래에서 술을 마시거나, 건물 옥상이나 층계에서 노숙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찜질방, 24시간 카페, 쪽방 등 소액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생겨 아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눈에 띄지 않는 만큼 범죄를 모의하기도, 노출되기도 쉽다. "스무살 성인을 끼고 방을 구하면 따뜻하게 보내기는 하지만 음성적으로 범죄가 이뤄져요. 특히 가출팸을 꾸려서 자기들끼리 조건만남을 한다든지…."

이날 거리상담에서 만난 김씨는 가출 후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쉼터에 정착했다. 원하는 일을 하기위해 가출한 만큼 쉼터에 머문 2년 사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프렌차이즈 제과점에서 제빵기사로 일하고 있다. 고향은 일년에 한두번 찾는다고 한다. 가장 의지하는 사람으로는 "쉼터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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