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영구·국민임대주택 예산

머니투데이 임상연 기자 | 2016.10.26 05:50

[the300][우리가보는세상]

여기 물에 빠진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수영이 가능하고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수영을 못하는데다 거의 탈진 상태다.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할까. 물으나마나 한 질문을 하는 것은 거꾸로 가는 정부의 영구임대, 국민임대 등 장기공공임대주택 예산안 때문이다.

국회에 제출된 2017년 예산안을 보면 정부는 내년 취약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영구·국민임대 공급 예산(주택도시기금 출·융자)을 대폭 축소했다. 우선 기초생활수급자 등 최저소득계층을 위해 50년 이상 또는 영구적으로 저렴하게 임대하는 영구임대 예산은 445억원으로 올해보다 37.8% 삭감됐다. 영구임대 예산은 2012년 4014억원에서 매년 급감해 내년에는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게 됐다.

소득 4분위 이하 저소득층이 30년 이상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는 국민임대 예산 역시 올해보다 절반 가량 축소된 5404억원이 배정되는데 그쳤다. 내년 영구·국민임대 예산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미착공 등 기존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서 이미 지급된 예산이 내년 예산과 상계처리됐기 때문이다.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도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예산은 크게 줄어든 반면 임대주택리츠와 민간임대융자 예산은 올해 1조1741억원에서 내년 2조6398억원으로 120% 이상 늘어났다. 특히 이 예산 중 80%(2조1127억원) 가량은 박근혜정부의 대표적인 임대주택정책인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공급에 쓰일 예정이다. 영구·국민임대 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3.6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아무리 뉴스테이가 현 정부의 역점사업이라고 해도 이 같은 예산 편성은 문제가 있다. 같은 임대주택이라도 뉴스테이는 영구·국민임대와 성격 자체가 다르다. 뉴스테이는 공적 기금이 투입되지만 엄연히 건설업체 등이 주인인 민간임대주택이다. 8년 의무임대기간이 지나면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분양전환으로 매각돼 임대주택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



민간임대주택이다 보니 소득기준이나 주택소유 여부 등 입주자격에도 특별한 제한이 없다.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억대 고소득자도 입주가 가능하다. 일부 뉴스테이가 평범한 중산층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힘든 4~5억원대의 높은 보증금이나 월 100만원 이상의 임대료를 받는 것도 최초 임대료 규제를 받지 않는 민간임대주택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같은 뉴스테이 공급에 공적 기금을 쏟아 붓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영구·국민임대 공급보다 시급한 일인지 묻고 싶다. 전월세난이 심화되면서 영구·국민임대 입주를 원하는 취약계층이 많지만 공급물량이 적어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게 우리나라 장기공공임대주택의 현실이다. 영구임대의 경우 입주하려면 평균 1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통계도 있다. 일각에서 이번 예산안을 박근혜정부의 뉴스테이 치적쌓기용 예산 몰아주기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월세시대 등에 대비해 뉴스테이와 같은 양질의 기업형 임대주택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공감한다. 이를 위해 공적 기금이 어느 정도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특히 국민 쌈짓돈으로 만들어진 공적 기금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적 기금은 공공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시급한 사업부터 실행 방안을 고민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옳다. 이런 고려없이 특정사업에 예산을 집중하는 것은 치적쌓기니 대기업 특혜니 하는 논란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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