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비교 안 되는거 없는데 의료비는 왜 안 되나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권화순 기자, 심재현 기자 | 2016.10.27 05:37

[국민건강 위협하는 건강보험 비급여]<8>-①"표준화 없이는 무용지물, 본인부담금 상향도 검토"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의료비 급증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늘어나는 비급여 의료비로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이 없으면 병원 가기가 부담스럽고 설사 실손보험이 있다고 해도 매년 오르는 실손보험료는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다. 비급여 의료비 증가세를 억제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봤다.

<b>◇비급여 단계적 급여화, 표준화 작업 선행돼야</b>=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려면 무엇보다 비급여 진료 항목을 단계적으로 급여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 가운데 국민 건강과 연관성이 높은 항목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로 돌려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급여 진료 항목이 늘어나면 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급여 수가가 낮아 급여 진료로는 손익을 맞추기 어렵다는 병원들의 반발도 걸림돌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되는 방안이 ‘100대 100 전액 본인부담’(이하 백대백 본인부담)이다.

백대백 본인부담은 효과가 인정된 비급여 진료에 대해 정부가 수가를 100%로 정해 병원에 지급하되 재정 부담을 감안해 의료비는 환자 본인이 100% 부담하는 방안이다. 환자가 의료비를 100% 내야 하는 것은 지금과 같지만 정부가 결정한 수가 이상으로 의료비가 올라갈 수 없어 비급여 의료비가 통제되는 효과가 있다. 최근 이용이 늘고 있는 내시경을 이용한 위·식도 종양 수술이나 대장 용종 절제술 등에 대해 우선 적용할 수 있다.


김양균 경희대학교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호주의 경우 백대백 본인부담을 통해 정부가 모든 비급여 의료비를 책정하는 방식으로 비급여를 표준화했다”며 “우리도 백대백 본인부담 항목을 확대해 비급여를 정부의 관리하에 두고 향후 본인 부담률을 낮춰주는 방식으로 단계적인 급여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별급여를 확대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선별급여란 비급여 진료에 해당하지만 건강보험이 일부를 보장하고 나머지는 본인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현재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 질환에 대해 실시 중이다. 손동국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선별급여는 비급여 진료를 급여화하면서 본인 부담금에 차등을 주는 방식”이라며 “현재는 4대 질환 등 일부에 한해 실시하고 있지만 이를 확대해 순차적으로 급여화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선별급여는 비급여 표준화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는 의료기관별로 비급여 진료 항목이 다르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경희대 김 교수는 “현재 선별급여가 진행되는 진료는 병원이 제공한 가격을 기준으로 건강보험공단과 환자의 부담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병원별로 의료비가 다 다르다”며 “우선 비급여 진료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 항목과 가격을 표준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b>◇가격비교 불가능한 깜깜이 의료비</b>=23조원에 달하는 비급여 의료비는 병원이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의료 소비자(환자)가 가격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해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는 점도 큰 문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각종 의류, 신발, 가전제품 등 생필품은 물론 여행상품이나 금융상품, 피부관리처럼 표준화가 어려운 서비스까지 가격 비교가 일상화됐지만 반면 비급여 진료는 국민 누구나 이용하는 중요한 서비스인데도 가격 공개는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비급여 의료비 공개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 것은 불과 3년 전인 2012년 물가관계장관회의 때다. 당시 정부는 ‘의료소비자의 선택권 확대와 비급여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며 정보 비교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는 5년이 다 되도록 병원들의 비협조와 소관 정부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의지 부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비급여 진료 항목은 약 1만6680개로 추정되지만 의료비 공개는 ‘찔끔찔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4년까지만 해도 300병상이 넘는 종합병원 이상만 공개 대상이었고 공개 항목도 37개에 불과했다. 현재는 치과병원과 한방병원, 전문병원이 추가돼 895개 의료기관이 정보를 공개한다. 지난해 말 ‘복지부가 비급여 의료비에 대해 현황을 조사하고 분석해 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료법이 개정됨에 따라 오는 12월1일부터는 150병상이 넘는 병원급도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b>◇실효성 떨어지는 의료비 공개..복지부는 홍보에 소극적</b>=문제는 국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의원급은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전체 3만2000여개 의료기관 중 의원급은 90% 이상을 차지하는 2만9000개에 달한다. 의원급의 비급여 의료비는 2008년 1조원에서 2014년 2조3000억원으로 2배 이상 불어난 상태다.

공개되는 의료비 항목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공개되는 52개 항목 중 △상급병실 이용시 추가 비용 △수면내시경 검사 △초음파검사 △MRI(자기공명영상)진단료 등 26개 항목만 실제 진료와 관계가 있고 나머지 6개 항목은 교육상담료, 20개 항목은 제증명수수료다. 사망진단서, 일반진단서, 입원확인서 등 수수료 항목은 엄밀히 말해 비급여 진료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의료비 공개에 소극적인 복지부도 문제다. 2013년부터 일부 비급여 의료비가 공개되고 있으나 복지부가 이를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애써 비급여 의료비 정보를 공개하고도 홍보 부족 탓에 정작 의료 소비자의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것.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개되는 비급여 의료비를 찾기까지 절차도 복잡하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의욕적으로 선보인 온라인 보험슈퍼마켓 ‘보험다모아’ 정책과도 비교된다. 금융위는 자동차·연금·저축성·보장성보험 등 국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보험상품의 가격을 온라인에서 손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별도 포털 사이트를 만들었다. 보험다모아 시연회에는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유명 연예인이 참석해 홍보에 나섰다. 금융위는 네이버 등 포털에서도 보험가격을 곧바로 비교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보험보다 훨씬 국민 체감도가 높은 비급여 의료비는 별도 사이트가 아닌 심평원 홈페이지를 통해야만 접속이 가능하다. 그만큼 접근성도 떨어진다. 심평원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에 (비급여 의료비 공개 관련) 임시 태스크포스(TF) 형태로 부서가 생겼는데 아직 비급여 의료비 공개를 관리할만한 정식 부서가 없고 공개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직원이 7~8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비급여 의료비 공개 항목은 앞으로 100개, 200개로 꾸준히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B>◇ 비급여 진료비 직권심사 도입해야</b> = 국회에서는 심평원이 비급여 의료비를 심사하는 직권심사제 도입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행법에서는 환자가 비급여 의료비가 적정하게 부과됐는지 확인을 신청해야 심평원이 조사해 잘못 청구된 의료비를 돌려준다. 이마저도 홍보 부족으로 심평원에 요청하면 과다 청구된 비급여 의료비를 확인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다.

심평원의 직권심사제도가 도입되면 환자가 비급여 의료비를 확인해 달라고 신청하지 않아도 심평원이 의료비 논란이 잦은 병원을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 심평원이 사실상 상시적으로 비급여 의료비를 관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제도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2013년 국회에 발의됐다가 지난 5월 19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서 폐기됐다.

당시 법안을 발의했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만간 이 법안을 재발의할 계획이다. 문제는 의료계에서 직권심사제 도입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급여 의료비를 마음대로 책정해오다 사실상 심평원의 관리를 받게 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그만큼 떨어질 수 있어서다.

의료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심평원이 비급여 의료비는 물론 비급여 진료의 적정성과 질까지 평가하도록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분별한 비급여 진료 남발이 오히려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어서다. 현재 심평원은 의료 질 평가를 수행하고 있지만 비급여 진료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남 의원은 “의약품은 DUR(의약품안심서비스)을 통해 급여, 비급여를 떠나 모든 외래처방 의약품의 안전성을 1차적으로 점검하고 있다”며 “다른 의료서비스도 급여 여부를 떠나 현장에서 안전성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b>◇실손보험 도덕적 해이 방지 위해 본인 부담금 올려야</b>=금융당국은 매년 오르는 실손보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손보험의 상품구조를 ‘기본형’과 기본형에 다양한 특약을 추가하는 ‘특약형’으로 전면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더 많은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받으려면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과잉진료 유발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에 대해 보장 한도를 제한하거나 본인부담금 비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손보험의 상품구조가 기본형과 특약형으로 분리되면 특약형에 대해서는 본인부담 비율을 2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본인부담금은 급여의 경우 10%, 비급여는 20%(표준화 전 상품은 10%)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과잉진료에 노출된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자기 부담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입원보다는 통원의 본인 부담금이 높고 치과나 안과 등 과잉진료가 자주 일어나는 진료는 본인부담 비율이 30%에서 최대 50%에 달한다”고 말했다. 또 “가입자 입장에서 당장은 본인 부담금이 오르기 때문에 손해인 것 같지만 결국 실손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만큼 보험료가 낮아지기 때문에 선량한 가입자는 본인 부담금 선택의 폭이 확대 될수록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이에대해 손주형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실손보험을 기본형과 특약형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기본형의 경우 본인 부담금을 높이면 전 국민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다만 특약형에 대해서는 본인 부담금을 상향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무분별한 의료쇼핑을 제어할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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