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펀드의 병사…혹은 외인사

머니투데이 배성민 증권부장 | 2016.10.21 10:15
머니투데이 증권부장
"4년전쯤에 일산에서 빠져나가 마포 홍대 주변 미분양 아파트를 잡았어요. 확장이니 인테리어니 신경 많이 써줘 돈 좀 굳었죠. 남은 돈에다 전세를 끼고 무리해서 반포 아파트를 매매해 재미 좀 봤습니다."

얼마전 만났던 지인의 부동산 투자 성공기다. '재미 좀'이라고 겸손해했지만 적어도 두어번 거래에 연봉의 대여섯배는 번 것처럼 보였다. 물론 투자가 실패해도 내가 들어가 살면 되지 하는 대비책과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든든한 직장이 있음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부동산 얘기뿐이다. 1억 ~ 2억(물론 이렇게 쉽게 말할 금액은 결코 아니다)만 있으면 대출 좀 끼고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분양권이나 전세 낀 아파트 하나쯤 사서 ‘몇천만원 남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전국적으로 '광풍(狂風)'이 몰아쳤던 2006년 전후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명확한 차이가 있다. 그때는 있었고 지금은 거의 희미해지는 ‘부동산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없고 말이다.

사실 당시 부동산 광풍과 함께 주식형펀드의 시대가 왔었다. 적립식 펀드만이 답이라며 모두 한목소리였다. 2003 ~ 2004년부터 시작된 적립식펀드 열풍은 저축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꿨다. 낮은 금리의 은행 적금에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저축하듯 투자하는 적립식펀드는 매력적인 투자 대안이 었다.

현인(賢人)으로까지 불리는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이 뉴스 속 인물이 아닌 어린이 위인전에 등장한 시기도 이때였고 마젤란펀드(1977년부터 1990년까지 2700%의 누적수익률을 올렸다는 피델리티운용의 전설적인 펀드)도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후 2007년까지 주가는 계속 올랐으니 적립식펀드가 정답인 때였다. 국내에서도 숱한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등장했고 펀드를 판 은행과 증권사, 펀드를 굴린 운용사는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이같은 통념을 깼다. 리먼브러더스 같은 투자교과서 속 회사들은 간판을 내렸고 전세계 금융시장은 얼어붙었다. 이후 여러차례 경기침체까지 겪으며 금리는 계속 내려갔다. 저성장이 심화됐고 일본이나 유럽은 마이너스금리(은행에 돈을 맡기면 돈을 내고서 찾아야 하는 것을 의미)를 도입하기도 했다.

저금리 시대를 헤쳐갈 재테크 해법으로 주식형 펀드가 거론됐어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 했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 투자전략부장은 "6년째 이어진 2000선 언저리를 맴도는 코스피 박스권과 주식형 펀드 수익률 부진이 주식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사들은 주식형펀드 외에도 해외펀드나 부동산펀드, 고액자산가들에게 국한되는 헤지펀드 등 다양한 돌파구가 있다. 하지만 부동산으로 뛰어들 배짱과 종잣돈이 없는 서민들은 그렇지 않다.

펀드가 앓는 수준을 넘어 고사하고 있다. 세계 최대라는 노르웨이국부펀드가 '증시의 종말'을 슬며시 내비칠 정도니 세간의 시비처럼 사망진단서를 쓴다면 '병사'라고 할만도 하다. 상장주식보다 빌딩을 갖고 싶다는 대기업 오너 2 ~3세들도 많다. 솔직한 고백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는 "펀드의 시대를 열었던 금융사와 주역들이 펀드의 몰락을 보고도 반성문 하나 내놓지 않고 있다"며 자기반성이 우선이라고 했다. 펀드로 번 돈으로 M&A하고 직원 월급 주고 사옥지어 대형화로만 달려가지 말고 말이다. 펀드 판매에 열을 냈던 곳에선 ELS(주가연계증권), 저축성보험을 슬며시 내민다. 환자가 떠나 A병원이 망하니 B병원을 차리는 식이다. 수술이나 신약 개발보다 이처럼 또다른 병원이나 계열사 차린 곳들이 숱하니 어쩌면 '외인사'일지 모른다.

거의 10년간 국내외 주식형펀드에 적립식으로 돈을 부어왔다는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 앞두고 펀드를 다 깼어요. 원금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펀드요, 글쎄." 후배가 펀드에서 완전히 맘이 떠나기 전에 기회가 된다면(아니 꼭 돼야겠지만) 펀드 사망진단서가 아닌 부활의 기록을 꼭 쓰고 싶다. 병사도 외인사도 아닌 '100% 완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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