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명품 스피커 장인이 된 기자…그의 '외도'는 무죄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조성은 인턴기자 | 2016.10.20 06:30

[이코 인터뷰]100% 수작업 주문제작 '쿠르베' 스피커 만드는 박성제 대표

편집자주 | 머니투데이 이코노미스트가 금융계와 산업계, 정계와 학계 등의 관심 있는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박성제 쿠르베 오디오 대표/사진=이기범 기자
'드라마 '밀회'에 나온 스피커'

40대 유부녀와 20대 청년의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로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JTBC 드라마 ‘밀회’의 미술감독은 여주인공의 연습실에 그랜드피아노와 함께 놓을 아주 특별한 스피커를 찾았다. 남녀 주인공이 피아니스트라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감각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스피커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밀회의 스피커'로 선정된 게 바로 예술성과 독창성을 겸비한 '쿠르베 스피커'였다.

‘쿠르베’(Courbé)는 프랑스어로 곡선을 의미한다. 이름처럼 쿠르베 스피커는 모두 곡선으로 예술적으로 디자인돼 있다. 각이 많을수록 음이 일정치 않고 고운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클로저(울림통)도 여타 스피커와 달리 원통형이다.

“오디오를 잘 모르는 사람도 단 몇 분안에 제대로 된 명품 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쿠르베 스피커를 제작하는 박성제 대표(49)는 쿠르베의 예술적인 디자인과 사운드에 대해 무한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박 대표는 쿠르베의 독특한 디자인 만큼 매우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에 장인의 풍모를 지닌 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MBC의 잘 나가던 기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하이엔드 스피커 시장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해고’라는 뜻밖의 사건 때문이었다.

◇쿠르베 스피커의 탄생

19년간 MBC 기자로 일했던 그는 2012년 파업의 배후자로 낙인찍혀 해고당했다. 당시 박 대표는 전임 MBC 노조위원장이었다.

해고 후 집에서 뒹굴던 2012년 가을, 아내의 부탁으로 6인용 식탁을 만들려고 공방을 드나들다 어느날 스피커 제작에 눈을 돌렸다. 기자가 아닌 스피커 장인으로서의 인생 2막은 그렇게 시작됐다.

평소 음악을 좋아했던터라 스피커에 관심이 많았다. 박 대표의 음악사랑은 유별나다. 그저 음악 듣는 것이 좋아서 유년시절부터 음악에 흠뻑 빠져 살았다. 아버지가 사주신 워크맨이 닳을 때까지 음악을 듣고 또 듣던 못 말리는 음악매니아였다.

서울대 국문학과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합격소식보다 더 그의 마음을 벅차게 한 것은 바로 아버지가 합격선물로 주신 100만원이었다. 거금 100만원을 받아들자마자 그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무작정 세운상가로 향했다.

쿠르베 스피커는 우연히 시작된 사업이 아닌 음악을 향한 그의 애정이 직업으로 연결된 결과물인 것이다.

쿠르베 스피커/사진제공=쿠르베 스피커
◇하이엔드 명품 스피커 사업에 도전

원래 쿠르베는 박 대표가 처음 완성한 스피커의 이름이었지만, ‘쿠르베’라는 이름이 입에도 잘 붙고 부를수록 정감이 들어 회사 이름으로 선택했다.

쿠르베는 핀란드산 수입 자작나무만으로 백 퍼센트 수작업으로 주문제작되는 고급 스피커다. 하이엔드 스피커이지만 가격에 거품은 쏙 뺐다. 박 대표는 최고의 디자인과 사운드를 구현하는 이 명품 스피커를 몇백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시장에 내놨다.


“쿠르베를 한국의 ‘소너스 파베르’로 키우고 싶습니다.”

박 대표의 꿈은 쿠르베를 '소너스 파베르' 같은 한국의 명품 오디오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다. 소너스 파베르(Sonus Faber)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피커 메이커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제품은 자신 있었으나 평생 물건 한번 팔아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가격을 매기는 일조차 어설펐다. '원가에 수고비 정도 붙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지만, 처음엔 회사 유지비조차 나오지 않았다. 쿠르베는 판매가의 70% 정도를 부품가격이 차지하는 구조여서 이윤을 크게 남기기가 어려웠다.

"아직까지 적자는 아닙니다. 매월 1~2대씩은 팔고 있습니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쿠르베 스피커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박 대표는 마케팅 비용이 부담스러운 탓에 적극적인 홍보활동도 나서지 못 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 ‘밀회’ 덕분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도 꾸준히 지명도를 넓혀 갔다. 이러한 경로로 쿠르베 스피커를 찾는 고객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지금까지 한달에 1~2개씩은 꾸준히 팔 수가 있었다.

◇MBC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그는 달변가다. 어떤 소재든 흥미진진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니 듣는 사람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하고 맛깔스럽게 언어를 구사하는걸 보면 천상 기자다. 그에게는 아직도 말하기 좋아하는 기자의 피가 꿈틀거린다.

박 대표는 지금 MBC로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며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명품 스피커를 만드는 장인으로 잠시 '외도'를 하고 있지만 기자로 돌아가는 꿈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어쩌다 보니'는 그의 자서전 책 제목이다).

그는 “쿠르베를 만든 것이 행복한 도전이듯 MBC로 돌아가는 것 또한 새로운 도전이다”고 말한다.

현재 박 대표는 MBC 해고 무효 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했다. 대법원 상고심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그는 공방에서 명품 스피커를 디자인하는 장인으로 살 작정이다.

그리고 나중에 MBC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쿠르베는 한국 대표 명품 스피커로 자리 잡아 계속해서 만들어지길 희망하고 있다(그는 쿠르베를 잠시 전문가에 맡겼다가 한 10년쯤 후에 다시 복귀해서 그 때부턴 명품 스피커를 만들며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진실을 전하는 마이크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스피커로 손을 바꿔 잡았지만 아직도 손 때 묻은 마이크의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고 있는 박 대표는 “다시금 소통하는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며 환히 웃었다.

'어쩌다' 기자에서 명품 스피커를 만드는 장인으로 외도를 했지만 그의 외도는 '무죄'다.

쿠르베 스피커/사진제공=쿠르베 스피커

베스트 클릭

  1. 1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
  2. 2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자녀장려금 신청하세요
  3. 3 "욕하고 때리고, 다른 여자까지…" 프로야구 선수 폭로글 또 터졌다
  4. 4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5. 5 "6000만원 부족해서 못 가" 한소희, 프랑스 미대 준비는 맞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