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월스트리트저널보다 훨씬 똑똑한 독자들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 2016.10.19 05:51
미국의 저명(?)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난 17일(현지시간) 제목 장사는 참 그럴듯했다는 평이다.

큰 제목: Samsung Self-Tested Batteries in Galaxy Note 7 Phone.
(갤럭시노트7에 들어간 삼성 자체 테스트 배터리들)

중간 제목: Apple, other handset manufacturers use third-party labs certified by U.S. wireless industry’s trade group
(애플 등 다른 휴대폰 제조업체들, 미국 통신사업자연합회에 인증받은 제3의 실험실 사용)

삼성전자가 자체 실험실에서 스마트폰 배터리를 실험한 후 이를 출시해 문제가 발생했고, 애플과 다른 회사들은 CTIA(미국통신사업자연합회)의 공신력 있는 제3의 실험실에서 테스트를 진행해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제목만 보면 삼성전자는 무허가 자체 실험실에서 어설프게 실험한 것처럼 보인다.

산업1부 재계팀장(부장)
이 기사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배터리 소손(발화) 문제를 두고 그 원인을 분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분석이 이 기사에 댓글을 단 네티즌 수준에도 못미친다.

내용을 들여다봐도 제목과 큰 차이가 없다. 우스개 소리로 국내 일부 네티즌들도 '자체 실험실 인증이 화를 부른 게 맞다'고 말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보다 실험 전담 인력이 절반이고, 실험 가능항목도 적으며, 실험실 장비의 성능이 못하더라도 외부 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았더라면, '외부에서 했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내던졌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자체 인증은 기업 스스로에게도 부담을 주는 시스템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노키아, 모토로라와 함께 CTIA 배터리 실험실 인증을 함께 받았고, 국내 또 다른 CTIA 인증기관은 2012년에 인증을 획득했다. 이 인증기관에 비해 삼성전자의 수원사업장 배터리 실험실 인력이 2배이고, 규모도 훨씬 크다.

외부가 아닌 CTIA의 공인인증을 받은 자체 실험실에서 테스트한 것을 부실의 근거로 주장한다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판매되면 뻔히 부실이 드러날 자사 제품의 검증을 건성으로 했다는 주장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WSJ 독자들도 WSJ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이 기사에는 20여개 댓글이 달려 있다.

그 중 벤슨 텐들러(BENSON TENDLER)라는 네티즌은 "삼성전자가 자체 CTIA 공인 실험실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다른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비용절감과 비즈니스 부족으로 자체 실험실 문을 닫았다"고 전제한 뒤, "CTIA가 삼성전자의 자체 인증배터리 실험실 운영을 방전문제(발화문제)의 원인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 판 캡쳐.
과거 휴대폰 시장이 '노키아 제국, 모토로라 왕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누구도 이들의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이 기업들 내부의 테스트가 외부의 그 어떤 테스트보다 엄격했다.

하지만 이 업체들이 삼성전자와 애플 등 경쟁자에 밀리면서 사실상 사업을 접거나 자체 인증 실험실을 운영할 형편이 안돼서 내부 인증실험실이 사라진 것이지, 자체 인증 실험실의 내부 검증이 부실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WSJ에서 지적한 것과 달리 애플이 외부기관에 배터리인증을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제조업체가 아니라 기술 디자인 회사다. 자체적인 생산시설도 없고, 설계와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아웃소싱하는 업체다.

비용을 들여 굳이 자체 인증 실험실을 둘 이유가 없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자체 인증 실험실이 없는 이유는 CTIA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때문이다.

과거 전세계 D램 업체들은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메모리 인증을 받지 못하면 제품을 출시하지 못했다. 인텔만큼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드웨어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삼성전자만큼 더 엄격한 검증 시스템이 드물다.

CTIA는 우리로 치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업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기구다. 이 규정을 준수하더라도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 국가에서 스마트폰을 판매하려면 IEC62133 배터리 규격을 통과해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폭발 및 화재 등의 위험이 높아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는 'IEC62133'라는 국제 기준의 각종 안전시험을 통과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갤럭시노트7도 이 기준을 통과한 제품이다.

문제는 내부냐 외부냐가 아니라 삼성전자가 CTIA나 IEEE의 기준을 따랐음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스마트폰 시장에서 배터리 실험에 대한 기준들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WSJ의 독자인 벤슨 텐들러는 "IEEE1725(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 휴대폰 배터리 표준)의 규정을 손볼 시점이 왔다"며 "새로운 대용량, 고속충전 배터리에 IEEE1725가 적합한지를 고민해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보다는 더 치밀한 분석이다.

지난 8월 WSJ의 유명 테크 칼럼니스트 조안나 스턴(Joanna Stern)은 갤노트7의 제품출시 전 리뷰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안드로이드 폰'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당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멀티태스킹 능력을 가진 휴대용 컴퓨터로 만드는 길을 선도해왔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배터리의 소손 문제의 핵심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서의 도전 문제'다. 삼성 안팎에서는 '기술 한계의 끝을 건드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친 우(Chin Wu)라는 독자는 "삼성전자 엔지니어들이 IEEE의 표준을 따랐다면 애플이나 다른 제조업체들은 단지 임계치(한계)에 도달하지 않아 운이 좋았을 뿐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IEEE의 표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검토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실험실 내의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데니스 코터라는 독자는 CTIA의 최고기술책임자가 "우리는 1500개 이상의 배터리를 인증했다"며 "이런 사고는 처음이다"라고 말한 것을 예로 들며 "1500개라니, 표준 없이 이렇게 많은 배터리가 존재한다는 게 문제"라며, "손전등 건전지와 같은 표준 배터리 구성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며 표준화 문제를 지적했다.

WSJ가 CTIA 인증 실험실이 회사 내부에 있느냐 외부에 있느냐로 문제를 단순화할 때 더 똑똑한 독자들은 배터리 기술의 한계와 표준화라는 다른 차원의 접근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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