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죽여주는 여자'를 찾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 2016.10.18 03:10
주말에 작정한 영화를 봤다. 시쳇말로 공원과 산자락에서 만나는 ‘바카스 아줌마’가 주인공인 ‘죽여주는 여자’다. “그렇게 죽여준다며?” 정도로만 드러난 주인공은 실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사람을 죽여준다. 살인(방조)이고 범죄다. 하지만 복수나 폭력, 박진감 혹은 비장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몸은 60세쯤의 나이가 됐다. 계단이나 비탈길을 오를 때 얕은 숨을 토하는 주인공의 느린 속도를 따라야 했다. 내 10년, 15년쯤 후의 미래가 ‘죽여주는 여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그렇다 쳐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여자가 돼 죽여주는 남자를 찾지 말라는 장담도 할 수 없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가족에게 내 죽음에 대한 의지 몇 가지를 얘기한다. 우선 무덤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화장해 풍장 하거나 수목장 중 하나를 택할 작정이다. 돌보기 어려운 무덤을 생각하면 덜 미안하고 덜 서러운 일이다. 병들었을 경우, 인위적인 연명 작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중요한 바람이 있다. 내 죽음을 내가 선택하는 거다. 현재로선 위법이다. 물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도 염두에 둔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죽음의 형식을 단순화하자면 일순간 사라지는 것 혹은 그 사라지는 시기를 스스로 택하는 두 가지다. 전자는 익숙한 것에 인사할 시간이 없다는 아쉬움이(이도 실은 부질 없다), 후자는 일정 고통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상반된 이점이 더 크다. 무엇보다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상황. 죽음을 내 권리로 선택해야 하는 실질적인 조건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주변에서 이미 넘쳐난다. 노후를 즐길 충분한 돈이 있어도, 번듯하게 성장한 자식이 있어도, 요양병원에서 홀로 죽어가는 시간을 견디는 모습이다. 제발 죽여달라고 우는 그 어른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멋진 신사였다. 한순간 건강을 잃고 나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사는 게 바쁜 자식들은 그나마 돈으로 해결하지만, 죽어가는 이들에게 그건 최선이 아니다. 이조차 사치일 수밖에 없는 빈곤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죽여주는 여자가 택한 죽음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2011년 멘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매일 생각하고, 유머와 위트로 대하라고 충고한다. 반스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않다가 임박해서야 생각하는 건 큰 실수”라고 했다. 그는 또 “죽음에 대한 이해 없이 인생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책에서 인용한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건 그저 죽음과 익숙해지라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건 데’를 자문하는 일이다.

죽여주는 여자를 고민하던 날 저녁, 고(故) 백남기씨 유족 측이 고인의 시신 부검을 위한 경찰의 4차 협의 요청을 거부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법원에 부검영장 발부 취소도 요구했다. 고인이 평소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일관된 그의 삶(행적)을 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소신은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삶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서,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이라 해서, 국가 권력이 국민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아름다운 죽음의 방식은커녕 죽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모습이 끊이질 않는다. 죽음들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으로 자꾸 밀어내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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