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생존권]변호사가 많으면 왜 문제될까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 2016.10.18 10:48

[the L리포트]"변호사 너무 많다"vs"변호사는 자격일 뿐"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들이 5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행정사법 개정안 저지 및 행자부 장관 사퇴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스1
변호사들이 '생존권 보장'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회)는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변호사 생존권 보장 및 행정사법 개정안 저지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변호사들이 생존권을 내세우며 집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행정사가 행정심판을 대리할 수 있도록 한 행정사법 개정안을 철회하라'는 것과 '변호사 배출 수를 줄이라'는 것. 집회의 계기는 행정사법 개정안이지만 그 이면에는 변호사 수가 늘면서 업계 전반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있다.

2016년 현재 한국의 변호사는 '생존권'을 위협당할 정도로 많을까. 그런데 이에 앞서 변호사 자격을 가진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문제일까.

"'법조특권 해소·수임료 하락·전문가 확보'위해 법조인 늘리자"

'변호사 수'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정부가 사법개혁을 추진하면서다. 1995년 구성된 세계화추진위원회는 법조인 수 증원, 법조인 양성제도 개편 등을 사법개혁의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당시 위원회는 법조인의 대폭적인 증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300명 수준이던 사법시험 선발인원을 단계적으로 1000명까지 늘렸다.

이후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적정 변호사 수'는 다시 한 번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로스쿨 입학 정원과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정해야 했기 때문인데, 결국 입학 정원은 2000명, 변호사시험 합격자수는 1500명으로 정해졌다.

사법제도개혁 추진 당시 '법조인 수를 얼마나 늘릴 것인가'는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당시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법조특권 해소 △수임료 하락 △다양한 분야의 전문 변호사 확보 등을 이유로 법조인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변호사 너무 많다"…몇 명이 적당할까

이 때문에 변호사 단체와 학자들은 '적정 변호사 수는 몇 명인지'를 두고 다양한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학자들마다 매년 배출해야 할 법조인 수를 700명에서 5000명까지 예측하는 등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서울변호사회(서울변회)는 2004년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한 연구'를 통해 매년 700명씩 늘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변호사의 적정 수' 연구에서 매년 4000~5000명을, 김두얼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변호사 인력 공급규제 정책의 개선방향' 연구에서 매년 4000명씩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우현 인력수급전망센터 연구위원은 '법률 전문직 인력수급 전망'에서 "로스쿨 정원을 2000명으로 할 경우 수급불균형은 더 악화될 것"이라며 "연간 7200명의 법조인이 배출될 경우 2030년에야 2012년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이 연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이유는 물론 연구 방법과 ‘적정 수’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변회는 변호사 한 명이 한 달에 500만원의 순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건 수를 기준으로 사건 증감 추이, 국내총생산(GDP) 추이 등을 고려해 적정 변호사 수를 산출했다. 김두얼 연구위원은 소송사건과 시장 성장률, 국가 경제성장률 등, 궘우현 부연구위원은 수요와 공급, 소송 사건 수 추이 등을 고려해 전망했다.

인구 10만 명당 변호사…독일 200명·한국 35명

2016년 9월 말 기준, 대한변협에 등록된 변호사는 2만1761명이다. 이중 개업 변호사는 1만7890명, 휴업 또는 미개업 중인 변호사는 3871명이다. 오는 2017년 예정대로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나면, 매년 변호사시험을 통해 1500명의 변호사가 추가로 배출될 예정이다. 이 숫자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한상희 교수가 지난 8월 유럽 48개 국가의 변호사 수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 당 변호사 수가 독일은 200.5명, 프랑스는 85.7명에 이른다. 한국은 35.3명으로 조사 대상 중 한국보다 변호사 수가 적은 나라는 보스니아(35.2명)와 아제르바이잔(8.9명) 둘 뿐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가 지난해 출간한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미국의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249명, 일본의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3625명이다. 2014년 한국의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2769명으로,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미국보다는 많지만, 일본보다는 적다.

"변호사 역할·업무 범위 달라…단순비교 부적절"

표=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
소송 사건 수로 비교해보면 어떨까. 한 교수가 지난 8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제1심 법원에 제기된 신규 민사사건 수(등기·등록사건, 형사사건 제외)는 인구 1만명당 약 1030건에 이른다. 독일(485.8건)이나 프랑스(333.3건), 스위스(520건) 등과 비교하면 약 두 배 정도 많다. 한 교수가 2007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발생하는 민사사건 수가 24.8건일 때 일본은 4건으로 나타났다.

사실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논의를 하면 주로 국가별 인구, 사건 수나 경제규모 별 변호사 수를 비교하지만, 이 같은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나라마다 변호사들의 역할이 다른데다 일본처럼 인구 당 변호사 수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소송 건수는 한국보다 적은 경우에는 인구 당 변호사 수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른바 국가별 인구 당 변호사 수 비교에 따른 오류'라는 기고글에서 "나라별 변호사들의 일의 범위, 업무 성격이 달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률관련 직역 포함하면 변호사 많다"vs"해외에도 법률관련 직역 있어"

변호사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 또한 변리사와 관세사, 세무사 등 법률 관련 직역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변호사 수는 적지 않다며 '인구 당 변호사 수'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서울변회는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수 연구'에서 "법조 인접 직역 종사자 수를 포함하면 변호사 1인당 인구수는 422명으로 영국이나 독일보다 적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두얼 교수는 "부동산을 하는 공인중개사까지 법조 관련 직군으로 보고 통계에 넣고 있는데 이는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며 "만약 이렇게 비교를 하고 싶다면 다른 나라에도 상당한 규모의 법률관련 직군이 있기 때문에 이를 포함해 통계를 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을 얻으면 변리사 등 관련 직역 자격을 바로 얻을 수 있는 등 다른 나라보다 업무 영역이 훨씬 넓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적정 수' 논의 불필요…변호사 '자격' 제도 돼야

변호사 단체들을 중심으로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학계에서는 이같은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변호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인 자격증 발급 여부를 국가가 인원을 정해 통제한다는 것은, 통제를 하는 쪽의 자의적인 가치가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법률 시장의 크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규모가 결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국가가 인위적으로 변호사 수를 조정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상희 교수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변호사 배출을 통제하는 곳은 한국과 일본, 대만 정도로 일제강점기 시절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독일의 경우 매년 만여명의 변호사 자격자가 나오는데 이들 중 3000명 정도는 변호사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교수는 또 "일정한 능력과 인격을 갖춘 자에게 인원 통제 없이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고 실제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은 시장 기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법률 시장에서 필요한 국가의 역할은 공정거래의 확보 정도로 위법행위나 변칙영업을 하는 변호사들을 통제하는데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변호사가 너무 많다거나 적다는 논의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자격증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췄다면 발급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원 통제를 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변호사 단체에서 자격 제한 이유에 대해 현재 변호사의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몇 명의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말을 하는데 변호사들의 소득 보장이 변호사 수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쟁 심하면 변호사 공공성 낮아질 것"vs"법률서비스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변호사 선발 인원 제한이 필요하다는 쪽에서는 변호사 업무의 공익적 영역 때문에 너무 많은 변호사가 배출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말 변호사 수를 줄여 변호사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야 법률 시장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변환봉 변호사는 지난 2014년 서울변회가 주최한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이기 때문에 고도의 교육적 수준과 실무 자격에 필요한 품성, 높은 수준의 윤리성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며 "경쟁과 시장논리가 변호사를 지배할 경우 공공성과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가 아니라 자본을 갖추거나 마케팅에 능한 변호사가 살아남을 뿐 손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 간다"고 강조했다.

반면 변호사 수를 정부가 통제하면 오히려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 공급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두얼 교수는 "정부가 변호사 공급을 완전경쟁 균형보다 낮은 수준에서 통제하면 수임료는 규제가 없을 때보다 높은 값에서 결정되고 소비자는 그만큼 더 높은 가격을 내야 한다"며 "변호사가 필요한데 가격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변호사들이 법정에 설 수 있는 독점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분쟁 해결을 제대로 못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기술 인력들이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전문가들이지만 국가가 소득을 보전해주지 않는다"며 "이와 비교해 변호사들의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해 인력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특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상희 교수 또한 "변호사를 선임한 소송 건수가 낮은 이유는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없어서"라며 "법률 서비스는 언제든지 국민이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력의 정도에 따라 법 적용 결과가 달라진다면 법적 정의라고 할 수 없다"며 "법률 서비스 공급은 법조인들의 경영상 판단에 의해 이뤄질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수요에 따라 결정돼야 하는 것으로, 법조인 측에서 적극적으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변호사 수)을 줄여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교수는 또 경쟁이 과열돼 무리한 사건 수임 현상이 나타나고 법조 브로커가 성행하는 등 법질서가 혼란해 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는 질의 문제가 아니라 변호사 윤리의 문제"라며 "변호사협회 등을 중심으로 전문가집단의 내부적 통제 장치를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답했다.

"법률 시장에 대한 시각 넓혀야…변호사 부족 사회경제적 문제 확대 심화할 것"

김두얼 교수는 "사건의 액수와 복잡함에 따라 소송당사자가 필요한 변호사의 수와 능력은 달라질 수 있다"며 "변화하는 법률 수요를 파악해서 그에 맞는 시장의 발전 방향을 전망하는 것이 근본 취지인데, 적정 변호사 수 추정 작업에서 보이는 혼란은 계산상의 문제라기보다 법률시장을 바라보는 규제옹호론자들이 시각이 협소하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지난 30년간 법조 인력의 증가가 변호사 시장의 변화와 팽창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법률 산업은 물론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사회 경제적 문제들은 더욱 확대되고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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