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이가 나를 부르고 있다...IOM2의 최종장

머니투데이 박지혜  | 2016.10.29 07:14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7회>

일러스트=디자이너 임종철
5.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어두웠고, 습했으며, 담배 냄새와 오줌 냄새가 뒤섞인 악취까지 풍겨왔다. 사방은 축축하게 젖은 시멘트벽으로 감싸여 있었다.

하나, 둘, 셋, 넷……열둘.

열둘, 열하나, 열, 아홉……하나.

주노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숫자를 되뇌었다. 층계는 앞으로 세나 거꾸로 세나 모두 12계단이었다. 그녀는 벌써 일곱 번째 층계를 오르고 있었다. 건물 층수로 따지면 3층 이상이 되는 높이를 올라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옥상 문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노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헛구역질을 했다. 끈끈한 침을 토해낸 그녀는 멍하니 초등학교 때 들었던 괴담에 대해 떠올렸다. 옥상 문 앞에는 12개의 계단이 있는데, 밤 12시만 되면 13계단이 되어 층계를 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옥상 앞에 13계단이 놓여있으면 어떡하지? 나는 또 죽는 건가?

주노는 계단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이내 피식 웃었다. 만약 실패해서 죽는다 해도 다시 로드해서 마지막 구간을 반복하면 그만이다. 13계단을 밟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PD의 연락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놈의 PD가 무슨 꿍꿍이속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일단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홉 번째 층계를 오르자 마침내 녹이 잔뜩 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이 보였다. 주노는 마지막 계단을 올라갔다.

열둘.

그녀가 숫자 세기를 마쳤다.

열세 번째 계단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주노는 다시 헛웃음을 지었다. 사람이 너무 긴장을 하면 오히려 웃음을 터뜨린다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본드라도 흡입한 사람처럼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수십 번의 죽음을 맞이하고 손발이 뜯기는 고통을 참아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이 그저 게임일 뿐이라는 사실이 우스워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주노는 옥상 문손잡이를 잡고 힘껏 돌렸다. 문을 열자마자 비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는 옥상 밖으로 나가자마자 흠뻑 젖은 생쥐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아영의 뒷모습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아영아!”

주노가 그녀를 불렀지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에 막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영아, 제발 그러지 마!”

주노는 아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 때는 널 막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라.”

그녀가 말했다.

“널 구하러 왔어.”

주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받혀 올라왔다.

지난 8년간 수도 없이 이날을 그려왔다. 게임 속에서나마 과거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라면, 주노는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비난받아도 상관없었다.

아영은 고개를 숙인 채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스팔트 바닥은 지옥으로 향하는 낭떠러지처럼 보였다. 주노는 떨리는 손으로 아영의 어깨를 잡았다. 시체를 잡은 것처럼 소름이 끼쳤지만 그녀는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아영아. 이제 돌아가자.”

주노는 어느 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랑 같이…….”

그녀의 말에 아영은 푹 젖은 머리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주노는 드디어 아영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눈을 떼지 못했다.

주노는 얼음동상처럼 굳어버렸다.

아영은 고등학생 때의 주노와 똑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얀 피부에 검은 생머리. 강아지처럼 큰 눈과 오뚝한 코. 파랗게 질린 뺨과 입술. 비에 젖어 있으나 그 때문에 더욱 애처롭게 보이는 얼굴.

아영은 주노가 뭘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그대로 허공에 몸을 던졌다.

곧이어 몸뚱어리가 땅바닥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노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차마 아래를 내려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영이 다시 죽음을 맞이하자 게임의 배경도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끝없이 쏟아지던 비가 수도꼭지를 잠근 것처럼 뚝 그치고, 하늘 또한 언제 태풍이 불었느냐는 듯이 맑아졌다.

주노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의 옥상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비에 푹 젖었던 몸은 어느새 말라 있었다. 전신을 뒤덮고 있던 상처도 깨끗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갑작스런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이번 회차는 실패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제 그녀 스스로 게임을 끝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호음이 울렸다. 주노는 또다시 시청자들의 욕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 달리 채팅창의 분위기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 뭐야? 방송국이 어떻게 됐다고?

- 50명이 대피했다는데. 심각하네, 이거.

주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송국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당황하건 말건 의미 모를 채팅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 지금 앰뷸런스 온 거지?

- WGN 개국 1주년 만에 문 닫게 생겼네. 불쌍하다ㅜㅜ

- 누가 죽었다는 거야? 설명 좀 해줘.

- 연기가 엄청 나네ㅠㅠ 나 무서워서 앞으로 VR게임 못할 듯……

도무지 네티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앞 내용을 읽어보려 해도 초당 수백 개가 넘는 메시지가 쏟아지는 바람에 스크롤을 밀어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주노는 PD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PD님!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에요? 지금 방송 진행되고 있는 거 맞아요?”

주노가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스마트 워치를 이리저리 조작해보았지만 기계는 도리어 멈춰버리고 말았다. PD의 지시도,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네티즌들의 채팅도, 방청객들의 환호성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임이 실패로 끝났다면 주노는 진즉에 이전 세이브 파일로 돌아가 있어야 했다. 만약 네티즌들의 말대로 방송 중 사고가 났다면 스텝들이 그녀를 깨워 대피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하지 않았는가?

등골이 오싹해졌다. 생명체가 없는 외계 행성에 홀로 남은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주노는 엄지손톱을 질겅질겅 씹으며 눈알을 굴렸다. 옥상은 텅 비어 있었다. 계단으로 향하는 문도 막혀 버렸다. 누군가가 이토록 간절한 순간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게임을 끝내려면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다. 엔딩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줄 NPC(Non Player Character)가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등장한 NPC는 한명밖에 없었다.

주노가 그녀를 떠올리던 찰나,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그렇지, 게임에 NPC가 없어서야 말이 되겠는가. NPC는 여느 게임들처럼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스토리와 진행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다. 주노는 구세주의 발소리를 들은 것 마냥 환희에 찬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미안하지만 틀렸어.”


NPC, 아니 옥상으로 올라온 신지수 선생이 말했다.

“이건 게임이 아니야.”

멀리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교정은 온통 부드러운 연어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땀에 젖은 살갗을 식혔다.

늦여름의 낙조였다.

“그래도 오늘은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어.”

신지수 선생은 손부채를 만들어 눈을 가리고는 서쪽 하늘에 걸린 태양을 바라보았다.

“처음 네가 이 짓을 시작했을 때는 옥상까지 오는 데 2박 3일이 걸렸지.”

“아까 분명히 당신한테서 도망쳤는데.”

주노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은 다정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는 여기서 백번도 넘게 만났어.”

선생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주노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주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내가 게임리로드를 백번이나 했단 말이에요? 만약 그랬다면 그 전에 PD가 나를 죽였을 거예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이건 게임이나 방송이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요? 죽었다가 살아나고, 다시 스토리를 진행하고, 시청자들이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게임이 아니면 대체 뭐냔 말이에요?”

“네 머릿속.”

선생은 주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수상태에 빠진 너의 뇌 속’이지. 이번에는 제발 한 번에 알아들었으면 좋겠구나.”

주노는 잠시 선생의 홀로그램다운 매끈한 얼굴을 응시했다.

이윽고 그녀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곧 배가 당기고 옆구리가 아파왔다. 한참을 폭소하던 그녀는 눈물까지 훔치며 선생에게 말했다.

“당신 너무 웃긴다. 나 방금 소름 돋았잖아. IOM2는 참 대단한 게임이야. 공포장르에서 코미디까지 다 나오고.”

“…….”

“그런데 어이없는 게 뭔지 알아? 여기서 당신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야!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NPC야. 컴퓨터에 입력된 대사 말고 다른 말은 못하는 캐릭터일 뿐이란 말이야!”

주노는 선생에게 손가락질하며 한껏 비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신지수 선생님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선생님은 준오를 인정해준 적이 없었다. 준오가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도, 열심히 공부해 성적을 올려도 미소조차 지어주지 않았다. 아영이 준오의 글을 비슷하게 따라 썼다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의 상을 박탈하기까지 했다. 그때 선생님은 울며불며 사정하던 준오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무지렁이 보듯 내려다봤다.

마치 지금처럼.

“다행이야. 적어도 울지는 않아서.”

그렇게 말하는 선생의 얼굴은 조금도 다행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게임을 107번이나 반복하는 동안 내가 진실을 얘기했을 때 너의 반응은 셋 중 하나였어. 웃거나, 울거나, 아니면 멍하니 있거나. 이번에는 웃는 쪽이라 성가시지 않아서 좋네.”

“내가 IOM2를 107번이나 플레이했다고?”

주노는 이제 기가 막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난 오늘 IOM2를 처음 해봤어!”

“오늘이 며칠인지는 알고 있어?”

“그야 8월 18일이지. WGN 방송국 개국일이니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해?”

“당연한 거 아냐?”

“그럼 지금 말해봐.”

선생이 다시 주노에게 다가왔다. 주노는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떠올려보려 했다. 방송국에 오자마자 PD가 대기실로 들어와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스튜디오로 나가자 팬들이 몇 명 있었다. 오렌지 주스가 있어 한 모금 마셨다……아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설탕이 잔뜩 들어간 주스는 마시지 않는다. 주노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마치 몇 달 전에 본 드라마를 떠올리는 것처럼 두서없는 삽화들만 기억날 뿐이었다.

“왜 그러는 거지?”

선생이 물었다.

“설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

“내가 왜 그걸 당신한테 얘기해 줘야 돼?”

주노는 불퉁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회차를 거듭할수록 퇴화하고 있구나.”

뜻 모를 말에 주노는 울화가 치밀었다. NPC와의 선문답 따위에 낭비할 시간 따위 없었다. 그녀는 다시 시계를 두드리며 PD를 불렀다.

“PD님! 들리면 대답해 주세요! 저 이제 게임 못하겠다니까요? PD님!”

“지금 뭐하는 거야?”

선생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주노는 선생을 무시하고 계속 시계를 두드렸다.

“언제까지 그 깡통을 두드릴 셈이야?”

“시끄러!”

주노가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노는 경악했다. 그녀는 정신없이 바닥을 둘러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까지 뒤져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를 현실과 이어주는 통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8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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