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일방독주와 획일화의 위험성

머니투데이 이근덕 노무법인 유앤 공인노무사 | 2016.10.14 04:31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사관계가 시끄럽다. 철도공사·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서울대병원을 비롯한 10개 공기업노동조합의 4만여 노동자가 10여일 째 파업 중이고 금융산별노조도 지난 9월23일 1차 총파업에 이어 2차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봐온 파업과는 그 양상이 다르고 쉽게 끝날 분위기도 아니다. 반면 서울지하철공사·서울도시철도공사·서울시설관리공단·서울농수산식품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 등 서울시 지방공기업 5곳은 파업 3일째인 지난 9월29일 노사합의를 거쳐 파업사태를 종료했다. 동일한 이슈지만 해법과 결과는 너무 다르다.

성과연봉제가 타당한지 여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성과주의와 연공주의를 둘러싸고 무수히 많은 논쟁을 해왔으니 ‘연공서열에 의해서만 관리되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가 대세라는 정도로만 정리한다. 그러나 성과연봉제 도입이 일방의 주도로 무리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인지, 또 기업의 성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기업에 획일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것인지, 그 문제는 짚고 넘어가보자.

정부는 올해 1월 전체 공공기관에 대해 간부급 직원만을 대상으로 해온 성과연봉제를 전 직원에게 확대 적용하겠다며 시행을 권고했다. 정부는 권고에 그치지 않고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에 따라 경영평가 점수를 달리 하고 그에 따라 성과급도 차별하는 이른바 ‘당근과 채찍’을 구사했다. 그것까지는 강력한 의지표명이라 보고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 절제되지 않은 상명하복식의 강요와 통제는 납득하기 어렵다. 본래 당근과 채찍은 선택권을 전제로 한다. 당근이 좋아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채찍질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것인지는 당사자들이 선택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 선택권을 부정했으며 모든 기업이 일제히 실시해야 하는 것처럼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요해왔다. 심지어 매우 예외적인 상황을 일반화해 ‘이사회 결의를 통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도 적법하다’는 근거가 희박한 법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강요와 획일적 통제는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했다. 사용자들은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이기에 몰두했다.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고 조합원들을 감금하는 일도 벌어졌고(ㄱ은행 등)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법적 검토도 허술한 채 불법파업이라는 딱지를 붙이기에 급급했다(ㅊ공사 등). 당연히 노동조합의 반발은 커졌고 강해진 단결력은 좀처럼 풀기 어려운 파업사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파업의 타깃은 정부를 정조준했다.


얼마 전 박병원 경총 회장은 모 잡지와 인터뷰에서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너무 경직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최근 상황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또한 “(호봉제에서 성과급제로) 옮겨가는 과정은 적어도 10년은 잡고 차근차근 추진해야 하며 노사간 컨센서스(의견일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인터뷰는 노사관계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인 데다 경제단체 수장으로서의 소신이기에 더욱 빛났다.

서울시 산하 5개 공기업 노사도 파업을 마무리하며 첫 번째로 합의한 내용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서는 노사합의가 있어야 한다’였다. 지난하겠지만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기업의 성격과 사정에 걸맞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일방독주와 획일적 강요로 제도 도입은 가능할지 모르나 뒤따르는 시행착오와 커다란 후유증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그것이 후유증을 줄이고 가장 빨리 제도를 정착시키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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