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파운드, 브렉시트 구원자 될까

머니투데이 주명호 기자 | 2016.10.10 14:52

"통화가치 하락, 브렉시트 완충 역할"…장기적으로는 회의론 우세

31년만에 사상 최저로 추락한 영국 파운드화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공포에 추락한 파운드화 가치가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을 브렉시트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란 분석이 우선 나온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통화 약세는 수출을 촉진한다는 교과서적 이론이 배경이다.

반면 장기적 측면에서 통화약세 효과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회의적 시각도 높다. 수출이 더 이상 통화가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동환율제로 손실여파 흡수…개별통화·금융시스템도 긍정적 요인=지난 7일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6%대 급락하며 1985년 이후 31년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앞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내년 3월말까지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을 천명하면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파의 공포감이 다시금 짙어진 까닭이다.

브렉시트 투표가 있었던 6월 23일 이후에는 하루만에 8% 폭락하며 19767년 11월 18일 이후 약 반세기만에 가장 큰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투표 이후 현재까지 파운드화 가치는 지난주까지 16%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파운드화 급락을 많은 전문가들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떨어진 파운드화 가치가 신용부문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브렉시트 투표가 3개월 조금 더 지난 현재까지 영국 경제가 곤경에 빠졌다는 뚜렷한 신호는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고용은 점진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며 주식시장은 오히려 상승했다. 영국 국채시장 역시 강세를 지속했으며 주택시장도 매매활동이 활발하다.

물론 영국 경제가 아예 타격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영국 경제 규모는 브렉시트 투표 이후 약 6분의 1이 줄었다. 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로 인해 영국은 세계 5위 경제국 자리를 프랑스에게 내주고 6위로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이유는 영국 파운드화가 변동환율제 하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변동환율제는 우선 통화가치 변동을 통해 자본 순유출로 인한 여파를 흡수할 수 있다. 또한 낮은 통화가치로 자국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된다.

여기에 더해 변동환율제에서는 기준금리 조절로 금융자산의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금융시장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는 통화부양책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달러 등 기축통화가 통화가치를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의 경우는 채권, 주식이 폭락해서 손 쓸 수 없으며 은행 역시 유동성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혼란에 빠진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고정환율제였다면 통화가 터저버렸을지도 모른다"고 표현했다.

주식시장은 파운드화 약세 효과가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영국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기업들로 편성된 FTSE250지수의 경우 달러화 투자 기준으로는 브렉시트 투표 이후 13% 하락했다. 하지만 파운드화 투자자들 기준으로는 오히려 4% 가까이 상승했다.


중소기업들 뿐만 아니라 해외수출 비중이 막대한 대형기업들도 통화 약세 덕에 주가가 급등했다. 브리티시아메리카토바코(BAT),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아스트라제네카가 대표적이다. 이들처럼 다국적 기업들로 이루어진 FTSE100지수는 브렉시트 이후 현재까지 11% 올랐다.

파운드화가 유로화처럼 다수가 사용하는 통화가 아닌 개별 통화라는 점도 통화 약세를 반길 수 있는 요인이다. 독자적인 화폐로 통화 및 재정부양책을 의지대로 실시할 수 있는 만큼 통화가치 하락은 부양에 나설 수 있는 여지를 더 넓혀주기 때문이다.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은 소비 및 기업심리에 미칠 브렉시트 여파를 상쇄할 목적으로 정부가 인프라구조 지출을 확대할 것이란 신호를 최근 내비친 바 있다.

WSJ는 영국의 강한 금융시스템도 이점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민간기업들이 파운드화 자금을 쉽게 빌릴 수 있다는 의미다. 신흥국의 경우 대부분 자국 통화가 아닌 해외 통화로 자금을 빌려 쓰는데 그 경우 자국 통화가치 하락시 외채 규모가 부풀어 올라 점차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1997년 발생한 아시아 외환위기가 단적인 예다.

유로존 역시 이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개별 국가가 통화 및 재정정책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 문제가 발발해도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쿄미쓰비시UFJ은행의 데렉 할페니 연구원은 "통화 유연성 결핍은 유럽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라며 반대로 "영국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효과 '회의적'…"수출, 더 이상 환율로만 움직이지 않아"=하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파운드화 약세가 브렉시트 여파를 얼마만큼이나 상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논쟁선상에 있다. 환율만이 수출을 좌우하는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파운드화는 브렉시트 이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이미 가파른 하락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영국 수출은 통화가치 하락에 상응하는 수준만큼 반등하지 못했다. 일본도 유례없는 공격적인 통화완화책으로 지난 5년 동안 엔화 가치를 25%나 떨어뜨렸지만 수출은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글로벌화된 공급망도 통화 영향력을 낮추는데 일조하고 있다. 해외로부터 부품을 수입해 상품을 최종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가치 하락으로 수입가격이 높아지면 수출에 악재로 번질 수 있다. IMF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1997년에서 2012년 사이 수출에 미치는 통화 영향력은 이전보다 22% 감소했다.

브렉시트 협상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전문가 다수는 EU관세가 수출업자들에게 타격을 줄 뿐더러 영국의 이민규제는 장기적인 영국의 생산성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JP모간체이스의 알란 몽크스 영국담당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통화 약세가 완충 역할을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통화 약세가 제조업체들의 수출 및 생산성 강화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HSBC홀딩스의 데이비드 블룸 외환리서치부문 글로벌대표는 통화 가치가 더 하락해야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파운드화 가치가 내년말까지 달러대비 1.10달러까지 떨어지고 유로화와는 가치가 동일해질 것(parity)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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