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SF작가 김창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 등은 3부 '과학, 창작의 세계에 빠지다'라는 주제로 열린 토크 콘서트 무대를 맡았다. 이들은 사정상 불참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와 함께 이번 공모전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단이다.
현장에는 당선자를 포함해 본선 진출 작품을 쓴 30여 명의 응모자도 참여했다. 심사위원단은 이들의 작품을 토대로 SF의 정의부터 오늘날 과학 기술이 SF 문학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까지 조명했다.
우선 5명의 심사위원은 공모전에 도전한 총 300여 편 작품을 각각 60편씩 나눠 읽으며 본심에 오를 추천작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예심과 본심 모두 치열한 고민의 현장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응모자들의 실력 상향 평준화가 확인된 자리였다는 것. 자신이 예심에서 본심으로 올린 작품을 밀어주지 못한 심사위원도 있었다. 다른 심사위원이 본선에 올린 작품이 더 뛰어난 SF 작품임을 인정한 것.
사회를 맡은 박 대표는 "치기 어린 습작이 거의 없던 것이 20여 년 간 경험한 여러 공모전과 달랐던 점"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정 교수는 "과학 등 다른 분야에서 본업을 하면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소설에 도전한 분도 상당수 있는 느낌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심사로 배당된 응모작들은 거의 다 끝까지 읽어보게 만드는 소설들이었다"며 "예선에서 가슴에 울림을 안긴 작품도 있었고, 묘사 자체가 영화를 보는 듯한 작품도 나타났다"고 했다.
대상을 받은 작품 '피코'(이건현 작)는 인간과 인공지능(AI)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뤘다. 우수상을 받은 '코로니스를 구해줘'(박지혜 작)는 아프리카TV의 유명 BJ인 여성 게이머 '주노'가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구현하는 가상현실(VR)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사를 재구성하며 혼란에 빠지는 내용이다. 가작을 수상한 '네 번째 세계'(이인영 작)는 정통적인 우주모험이라는 소재와 엔트로피에 대한 작가만의 해석이 들어간 작품이다.
김 작가는 "기술과 사건의 조합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은 독특한 공모전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SF의 범주를 그 경계선이 안 보일 정도까지 넓혀야만, SF 작품이라고 인정될 만한 응모작도 있다"며 "수상은 실패했지만, 글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보면 기성 작가 가운데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인물이 아닐까 짐작된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SF란 무엇인지도 짚었다. SF가 갖출 최소한의 요건은 외면하지 않되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대담한 시도도 공존하는 분야로 정리된다.
김 작가는 "SF의 경계 자체는 역사가 긴 영미권에서도 논쟁이 끝나지 않는 문제"라며 "SF는 최소한 그 작품 안에 등장하거나 암암리에 깔려 있는 논리가 현실의 (과학적인) 세계관, 물리관 등과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고 개연성도 갖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장은 "문학적이기만 한 작품을 SF 소설로 인정하기 어렵다"면서도 "(심사 과정에서) SF적 요소가 충분히 있지만, 문장과 구성에서 문제들이 보인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무장했지만 퇴고 과정 등이 지나치게 부족해 떨어진 사례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과학의 최신 트렌드가 장르 문학에 미치는 영향에도 초점이 모였다. 박 교수는 "예심 때 접한 많은 소재가 AI과 로봇이었다"며 "SF 공모전은 당대 어떤 과학기술 이슈가 가장 화제인가에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과거 줄기세포와 복제인간이 이슈로 부상했을 때는 공모전도 대부분 복제인간을 다룬 작품들이었다는 것.
김 작가는 "(하지만 SF 소설 지망생은) 기술 흐름만 봐서는 안 된다'며 "주인공들의 정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못 벗어나는 응모작도 있었는데, 사회관과 세계관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학 이외 전반적인 흐름도 주목해야 시선을 사로잡고 작품성이 높은 SF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