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과 선물이 구분되지 않는 관행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스며있다. 기업의 하청관계, 정부의 대민관계, 정치의 패거리관계, 학교의 학맥관계, 언론의 취재관계, 조직 내에서 상하관계 등은 뇌물형 선물 혹은 선물형 뇌물의 수수관계로 지탱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러한 관계와 관행의 만연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데 따른 결과다. 사적인 부분에선 끈끈한 정이나 적당히 봐주기는 미덕으로 오랜 공동체 삶의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공적인 부분에서 이런 식으로 했다가 위법이 되고 탈법이 되기 십상이다. 이 부분에선 개인과 조직의 관계가 엄격한 절차, 계약, 책임, 권리관계로 규정된다. 전자에선 뇌물이 선물과 구분되지 않지만 후자에선 명확히 구분된다.
우리 사회에서 선물과 뇌물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은 전통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사적 부분의 거래가 현대의 공적 부분에서도 여전히 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빨리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전통과 근대, 개인과 국가 등 서로 이질적인 제도문화의 크로스오버(cross-over) 덕분이었다. 한국의 자본주의도 국가의 가부장적 개입에 의한 재벌 중심의 자유시장경제를 만든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선진국과 경쟁하면서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가정, 시장, 시민사회, 정부 모든 영역에서 전통적 유제는 이젠 지워내야 하고 대신 글로벌 규범을 조직과 운영의 원리로 삼아야 한다. 선물과 뇌물이 뒤섞인 인간·조직·제도의 문화로는 21세기 한국사회의 선진화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은 올바르게만 시행되면 한국사회가 21세기 선진사회로 나가는 길라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법은 선물과 뇌물을 엄격히 구분한 뒤 뇌물에 기반한 사회적 관행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물과 뇌물의 구분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과 함께 후자에서 전자를 없애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관행과 관계만 아니라 경제와 정치의 관행과 관계도 글로벌 규범에 맞는 합리적인 것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국내 소비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하지만 ‘뇌물경제’는 지하경제로 국민계정에서 처음부터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다. 뇌물경제 제척은 시장경제가 바야흐로 정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부정한 뇌물로 고가의 식사를 하는 데서 내 수입에 견주어 효용성이 높은 식사를 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 비로소 진정한 ‘호모에코미쿠스’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거듭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편 부정한 이익거래가 줄면 여기에 묻어있던 전근대적 권력의 관계도 그만큼 투명해진다. 부정한 뇌물로 권력자를 움직여 이권을 독점하던 데서 유권자로서 정당한 권리주장을 통해 정책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관철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 비로소 진정한 정치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한국 민주주의가 거듭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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