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도 꿈쩍않는 재즈팬들…“여러분의 태도 아름답다”

머니투데이 가평(경기도)=김고금평 기자 | 2016.10.03 18:08

[리뷰] 제13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훌륭한 무대에 아름다운 관객이 화합한 ‘감동의 현장’

반세기 가까이 활동해온 미국의 전설적인 크로스오버 재즈 밴드 오레곤이 제13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첫날 무대 헤드라이너로 올랐다. '관록'을 자랑하듯 가슴 깊이 꽃히는 음 하나하나의 미학이 남달라 보였다. /사진제공=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보슬비로 시작해 폭우로 번진 자라섬 일대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관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 오는 풍경을 안주 삼아 뮤지션의 무대에 더 집중했고, 빗소리를 연주의 하나로 인식하는 듯했다.

2일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에 묻힌 ‘제13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둘째 날 무대는 자연과 소리, 관객이 혼연일체가 돼 자라섬을 되레 ‘역동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감동의 현장이었다. 간혹 외국 뮤지션이 “우리들의 소리보다 여러분의 태도가 너무 아름답다”며 극찬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관객의 열정적인 태도는 뮤지션의 훌륭한 연주에서 나왔다. 화창한 날씨로 시작된 1일 무대부터 이어진 숨 막히는 뮤지션의 연주는 ‘왜 무대에 집중해야 하는가’라는 명제에 그럴싸한 답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밴드 '오레곤'의 베이스.
이날 오후 8시 크로스오버 재즈의 전설적인 그룹 오레곤이 무대에 올랐을 때, ‘현존 뮤지션 중 가장 완벽한 음악을 구사한다’는 세간의 평가가 허언이 아님을 오롯이 증명했다. 오보에와 소프라노 색소폰을 동시에 연주하는 폴 맥캔들리스가 클래식적 운율을 구사하면 베이스와 피아노는 재즈의 영역을 넘나들며 폭넓은 화폭을 그렸다.

때론 민속 음악이나 뉴에이지 같은 음악을 구사하기도 했는데, 그 단순한 선율에서도 심장 깊숙이 뚫고 들어오는 깊이감이 남달랐다. 특히 기술보다 감성을 앞세운 피아노의 타건은 반세기 가까이 음악을 해온 ‘관록’의 정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줬다.

메인 무대인 ‘재즈 아일랜드’에서 오레곤의 공연이 끝나자, ‘파티 스테이지’에선 좀 더 흥겨운 음악들이 튀어나왔다. 1일 오후 9시 20분쯤 블라디미르 쳇카르가 일단의 혼섹션(트럼펫, 색소폰 등 금·목관 악기 구성)과 함께 펼친 연주에 관객 모두 엉덩이를 흔들고 어깨를 들썩였다.

1일 '파티 스테이지' 무대에 오른 흥겨운 재즈 밴드 '블라디미르 쳇카르'. /사진제공=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마케도니아 공화국 출신의 기타리스트 블라디미르 쳇카르는 스무드 재즈는 물론이고, 흥겨운 펑키나 디스코까지 자유자재로 연주해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는 노래 중간 ‘대박’ ‘힘내라 힘’ ‘여러분이 최고예요’ 같은 최신 한국어를 자랑하며 코믹한 분위기도 이끌었다.

오후 10시 30분에 이어진 국내 레게 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도 잔잔한 리듬감에 탄탄한 연주를 선보이며 ‘국내 밴드로 보기 힘든’ 이미지를 구현했다. 2일 폭우가 절정에 달한 시각에 나타난 다이니우스 플라우스카스 그룹은 불편한 관객의 심기를 달랠 모양인지 전자음악과 록 사운드로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폭우에 흔들리지 않는 관객을 향해 “최고”를 연발하며 예정 시간을 넘겨서까지 함께 했다.

자라섬국제페스티벌은 무대에 오르는 음악 장르가 주로 ‘재즈’라는 점에서 음악 자체보다 자라섬 풍광의 분위기에 도취된 관객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재즈에 몰입하기 쉽지 않고, 익숙한 스타가 별로 없어 음악이 본의 아니게 소외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일 오후 폭우 속에 열린 '다이니우스 풀라우스카스 그룹'. /사진제공=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하지만 올해 페스티벌은 음악 자체가 주는 환희와 신선함에 환호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관광지로서도 손색이 없는 자라섬 일대에 대한 선호도가 음악에서도 익숙한 장르에서의 탈피에 대한 호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2일 메인 무대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재즈를 음반으로 들을 땐 너무 어려웠는데, 무대에서 직접 보니 신세계를 만난 듯 신선하고 아름다웠다”며 “매일 듣는 아이돌 댄스 음악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동이 이곳에선 매시간 생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던 관객 중 몇 명은 좀 전에 열중하던 뮤지션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느라 주최 측이 나눠준 소책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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