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실망할까 봐 미리 눈높이를 낮췄던 시장 참가자들이 화들짝 놀라 원유선물을 사들이는 바람에 유가가 5% 넘게 뛰어 올랐습니다.
사우디의 전략 선회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지난 4월에도 '원유생산량 동결'을 주제로 한 OPEC 회의가 있었죠. 불과 5개월 전이었습니다. 그때에만 해도 사우디는 "이란이 동참하지 않으면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사실 상 다 된 밥에 재를 뿌렸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이란이 돈 버는 꼴은 봐줄 수 없다는 식이었죠. 서로 종파가 다른 두 이슬람 국가는 현재 시리아와 예멘 등지에서 대리전까지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게다가 사우디의 치킨게임은 애초부터 미국 셰일오일 산업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폭락하는 유가에 증산으로 가속도를 붙였던 사우디는 셰일오일 산업기반을 와해시키고 난 뒤에 다시 유가를 입맛대로 좌우하는 맹주 자리를 노리는 것으로 평가돼 왔죠.
그런 사우디가 미국 셰일을 상대로 한 치킨게임도, 이란을 대상으로 한 힘겨루기도 모두 뒤로 하고 '감산'에 동의했습니다.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 그래프는 궁지에 몰린 사우디의 사정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7월 5631억달러로 지난 2014년 8월에 비해 1823억달러 격감했습니다. 지난해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GDP의 16%까지 불어났는데, 부족한 정부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보유외환을 대거 팔아 치웠던 것이죠.
"사우디가 결국 제 발등을 찍었던 것"이라거나 "이제는 5달러의 유가 추가하락조차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는 진단까지 있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실제 감산이 이뤄지는 지 추이를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계절적으로 자연히 산유량이 줄어드는 때에 맞춰 내려진 감산결정이기에 '꼼수'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가 '감산'을 수용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운 큰 상징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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