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로 내수 살리기 "월 10번이상 골프 쳐라"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 2016.10.11 06:30

[소프트 랜딩]내수 살리러 자기 돈으로 골프 치는 '우국충정' 공직자가 몇이나 될까

편집자주 |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골프를 치라고 했는데 왜 안 치느냐,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서 골프를 치면 내수진작에 도움이 된다."

말 많던 속칭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지난달 28일 자로 시행됐지만, 법 조항에 대한 해석이 애매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시범케이스가 되지 않으려고 사소한 식사 약속까지 사양하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골프 접대가 김영란법에 저촉되다 보니 법 시행 이후 예약이 급감하고 법인 등이 주로 이용하던 무기명 회원권은 자취가 사라졌으며, 개인 회원권 가격마저도 급락하는 등 골프장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그러자 법 시행 하루 만에 청와대가 나서서 내수활성화를 위해 골프장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청와대의 골프에 대한 사랑(?)은 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 장·차관 워크숍 만찬 자리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공직자들이 몸을 사리며 골프를 못 치고 있는 모습을 힐난하며 적극 골프를 쳐서 내수를 살려달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이 자리에 있던 장·차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골프를 친 뒤 인증샷을 올리자", "'내수진작' 머리띠를 두르고 골프장으로 가자"고 화답했다고 전해졌다.

청와대와 대통령, 그리고 장·차관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골프가 내수경제를 살리는 산업인데 왜 처음부터 골프 활성화에 적극 나서지 않았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 현역 군 장성들의 골프 파문이 일자 "특별히 주의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사실상 '골프금지령'을 내려 지금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었다. 당시에도 북한 핵실험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됐고 내수 경기는 암울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박 대통령은 입장을 180도 바꿔 골프 활성화를 주문하고 있다. 최근 언론사와의 간담회에서 "공직자들이 골프를 좀 자유롭게 쳤으면 좋겠다"고 하는가 하면, 앞선 장·차관 워크샵에서는 "공직자들도 내수를 살리기 위한 의무감으로 생각하고 골프를 많이 치시라"며 스스로 '골프 전도사'로 나섰다.

어찌 됐든 골프금지령이 3년반 만에 해제됐으니 공무원들은 이제 청와대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골프를 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앞으로 골프장에 자주 가는 공무원들은 청와대로부터 내수를 살리는 훌륭한 공무원이라고 표창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골프 활성화로 내수경기를 살리려면 도대체 우리 공무원들이 얼마나 더 골프를 쳐야 할까?


대한골프협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국내 골프활동인구가 531만명이며 1인당 이용 빈도는 월평균 4.9회(주당 1.2회), 지출비용은 월 40만원(주당 10만원)에 달한다. 국내 골프 이용(골프장과 실내연습장, 스크린골프장을 포함)에 따른 총 매출규모는 연간 약 25.5조원이다.

한국은행 산업연관표의 부가가치유발계수(0.653)와 고용유발계수(9.1명/10억원)를 적용하면 2014년 국내 골프장 소비는 대략 17조원의 부가가치와 약 23만명의 고용을 창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골프 활성화를 통해 내수를 진작시킨다고 할 때, 국내 GDP(2015년 실질 기준, 1464조원)를 1%p 높이려면 연간 22.4조원의 추가적인 골프 소비가 필요하다. 이는 약 467만명의 신규 골프인구가 늘거나 아니면 기존 골프인구가 그만큼 더 자주 골프를 쳐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골프장 개별소비세를 폐지한다고 당장 신규 골프인구가 크게 늘어난다고 예상하기 어렵기에, 결국 기존 골프인구가 더 자주 골프를 쳐야만 내수를 살릴 수 있다.

현재 국내 골프활동인구가 531만명이므로 이들이 GDP를 1%p 높이려면 앞으로 1인당 월평균 약 35만원(연간 422만원)을 추가로 골프에 소비해야 한다. 이를 횟수로 환산하면 지금까지 월 4.9회씩 치던 골프를 앞으로는 월 9.2회씩 쳐야 하는 셈이다.

이러한 목표도 박 대통령의 주문대로 공무원 100만명이 내수를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한달에 한번씩만이라도 골프에 동참한다면 그리 실현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대통령과 장·차관들이 발벗고 나서는 마당에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그런데 김영란법으로 이제 공무원들이 자기 돈으로 골프를 쳐야한다는 게 제일 문제이다. 그 전까진 골프 접대로 월 4.9회 골프를 쳤다면 앞으론 자기 돈으로 월 9.2회 골프를 쳐야 하니 말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 자기 돈을 써가며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골프장을 찾게 될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해외에 가는 대신 국내에서 골프를 치면 내수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해외 골프이용객도 2012년 123만명에서 2014년 113만명으로 줄어들었고, 연간 지출비용도 6조200억원에서 3조21억원으로 반토막이 된 마당에 해외 골프 수요를 국내로 전환해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가뜩이나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서민들의 삶은 날로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에 좌절하고, 교육비며 생활비 부담에 서민 가계는 신음하고 있다. 구조조정에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도 있고, 어렵사리 시작한 장사를 눈물을 머금고 접는 이들도 많다. 한창 나이에 연애와 결혼마저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 쪽방에서 취업이나 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과 장관들까지 앞장서서 골프를 통해서라도 내수를 진작시키려는 모습은 짠하다 못해 애처롭게 보인다. 정부가 진정 골프를 통해 내수를 진작시키기 원한다면 골프장 개별소비세만 폐지할 게 아니라 '반값골프장'이라도 만들어 신규 골프 인구를 적극 늘리는 게 차라리 덜 궁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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