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역린(逆鱗)과 염치(廉恥)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 2016.09.29 06:26
지난 4월 극우단체인 어버이연합에 뒷돈을 준 게 드러나 홍역을 치렀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대한 대기업 모금 의혹 과정에서다. 청와대의 지시로 '모금책'을 했다는 거다. "시대 흐름에 맞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설립을 주도했다"고 해명하지만, 두 재단의 설립 시기와 자금 모금 경위 등의 의혹이 명쾌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과도한 의혹 부풀리기 인지, 후진적인 정경유착의 민낯이 드러난 게이트 인지는 추후 밝혀질 일이다. 문제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서 그것도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시대에 아직도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이 오히려 재계 전체의 이미지 실추는 물론 반기업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는 꼴이다.

'역린'(逆鱗).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로 신하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용도 매우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비늘이 있기 마련이다. 그 비늘을 만져 왕의 분노를 사 죽임을 당한 사례는 고사에 수없이 등장한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관련 의혹을 내사하며 그 비늘을 건드려 청와대가 강경 대응에 나섰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역린은 왕조시대 절대군주였던 왕의 분노를 상징했다. 하지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에서 역린은 거대한 민심의 흐름으로 재해석하는 게 옳다.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고자 한다' 전경련 정관 제 1조다. 특혜와 수혜로 인식됐던 과거의 정경유착은 아니지만, 정권의 정책에 보험용으로 지갑을 여는 행태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하다. 그 논란의 중심에 전경련이 서 있다. 엄연한 자기부정이다.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역사적 방향과 상관없이 시대와 민심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역린을 거스르는 일이다.


이처럼 비늘을 만지는 일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전기료 폭탄을 던져놓고 임직원 1인당 평균 약 2000만 원의 성과급 얘기가 나오는 한국전력.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정년 연장과 대졸자 수 증가로 일자리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 암울한 시대에 인턴 채용 압력 행사 의혹에 휩싸인 전직 경제부총리. 심지어 재직 당시 2017년까지 청년 일자리 기회를 20만 개 이상 만들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초한지'의 항우는 유방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큰 강기슭까지 쫓겼다. 강만 건너면 목숨을 건지고 훗날을 도모할 수도 있었다. 배가 1척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부하들을 죽게 하고 왕 노릇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염치(廉恥)'가 없고 '면목'(面目)이 서지 않는다"며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었다.

흔히 항우의 됨됨이를 말할 때 '남자답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을 안다는 게 아니었을까. 염치없이 역린을 거스리는 일이 반복될 때 민심은 노여움으로 변하고, 결국 거대한 쓰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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