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훈 칼럼]경주지진의 교훈과 국민안전처

뉴스1 제공  | 2016.09.27 15:45
(서울=뉴스1) 김철훈 부국장 겸 사회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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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지진과 관련된 속설이 있다. 땅속 깊숙이 자리잡은 '거대 메기'(大?)가 요동치면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2년 후시미(伏見)성을 축조할 때 부하에게 보낸 편지에서 '메기에 의한 지진에도 견딜수 있는 견고한 성을 지으라'고 지시했고, 에도(江戶)시대 발생한 안세이(安政)대지진(1855년) 직전에 메기가 날뛰었다는 기록도 있다. 현대 일본 과학자들은 전자파에 민감한 메기의 지진 예지능력 여부에 주목하며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지진과 관련된 메기 이야기는 720년에 완성된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나올 정도로 일본은 역사가 길고 깊은 '지진의 나라'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규모 6.0 이상의 전세계 지진 960건 중 220건(22.9%)이 발생했고, 지금도 알려진 것만 2000개가 넘는 활성단층이 전 국토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 나라와 국민에게 지진은 숙명이며, 생존하기 위해 맞서야하는 천재지변이다.

그 이웃인 한국은 그동안 지진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한 나라였다. 규모 5.8과 5.1의 '9.12 경주 지진'이 엄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9.12 경주 지진은 문자 그대로 우리에겐 '충격과 공포'였다. 또한 현실화한 천재지변으로서의 지진에 대한 생각과 자세를 바꾸도록 한 전환점이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지진을 처음 몸으로 체험한 시민들은 물리적 공포에 사로잡혔다. 수백차례의 여진에 시달리며 '우리나라도 더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다'는 충격에 빠졌다. 전국적으로 내진확보가 된 건물은 7%에도 못 미치고, 교육기관의 건물 중 76%가 지진에 무방비 상태인 이 땅에서 예상을 초월한 강진이 발생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하는 불길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울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시민들은 지진에 대해 준비가 전혀 안된 사회적 실상을 확인하며 분노했다. 세월호참사 이후 재난사고의 컨트롤타워를 자부하며 출범한 국민안전처도, 경험이 없었던 시민도 당황하며 지진 앞에서 허둥거렸다. 지난해 '지진발생 대비 선제적 지진방재체계 구축 과제'를 100% 달성했다고 스스로 분석·평가했던 국민안전처로서는 부끄럽고 민망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안전처를 조롱하고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조언하고 격려하고, 지원해서 진정한 컨트롤타워로 바로 설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재난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나름대로 해온 그들의 노력을 모두 무시해서는 안된다.

오랜 세월 지진과 맞서 살아온 일본 정부가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재난은 항상 예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1995년 한신(阪神)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도 그렇게 일어났다. 세계 최고의 재난방재 기술을 자랑했던 일본은 한신대지진때 고속고가도로가 누워버렸고, 신칸센 철도시설이 파괴됐으며, 8000동의 건물이 붕괴되는 등 예상하지 못했던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인명구조와 재난관리 작업도 수행하기 어려웠다. 지진 후 일본 정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문제점을 보완했지만 동일본대지진 때는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와 또다시 예상밖의 재해를 당했다. 이때 발생한 후쿠시마원전 사고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천재지변은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사례다. 특히 지진은 그렇다. 우리도 지진발생 가능 국가가 됐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므로 지금부터라도 국민안전처가 진정한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9.12 경주 지진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행동요령을 담은 알기쉬운 매뉴얼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진으로 인한 상황별 피해유형을 분석한 기본적인 매뉴얼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국민안전처는 매뉴얼도 없는 조직이라고 느낄 정도로 이번 지진에서의 대응은 엉망이었다.

상황을 시민들에게 시시각각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작업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안전처와 기상청 홈페이지도, 재난주관방송인 KBS도, 재난정보 전달을 담당한 SNS도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9.12 경주 지진은 향후 지진에 대비한 사회적 홍보와 훈련이 필요함을 일깨워주었다. 지진이 나면 어떻게 자기 몸을 보호하고, 어느 곳으로 대피하며,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등을 훈련을 통해 익힐 수 있도록 해야한다. 지진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대피소를 확보하고, 건물의 내진대응 작업도 확대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구조적으로는 국민안전처가 좀 더 최고의 재난전문가가 모인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 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건물의 내진성 강화를 위한 법률 개정 등 법적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재난은 항상 예상을 초월한다'는 일본이 얻은 교훈을 항상 가슴에 담아 자만하지말고 성실하게 지진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안전처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재난전문가들이 자부심을 갖고 헌신하는 조직이 된다면 국민도 자랑스럽게 응원할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경험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진의 나라인 일본은 '향후 30년 안에 발생할 확률이 70%'라고 추정하는 규모 7.0급의 수도권 직하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2만3000명의 사망자와 61만동의 건물 붕괴, 95조엔(한화 약 1000조원)의 피해가 예상되는 감당하기 힘든 재난이지만 일본정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대비하고 있다. 이웃 지진의 나라에서 배워야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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