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입니까?"

머니투데이 런던(영국)·프랑크푸르트(독일)·파리(프랑스)= 정혜윤 기자  | 2016.09.26 04:30

[OECD20년 대한민국, 선진국의 길]<13-끝>-②"선진국=유토피아"가 아니다

편집자주 |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수출 세계 6위, GDP 규모 세계 11위 등 경제규모나 지표로 보면 그렇다. 이미 20년 전 선진국 클럽으로 분류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횡행하는 시대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 과연 선진국일까라는 물음에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앞으로 20년 동안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보기로 했다.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마틴 파월 영국 버밍엄대학 교수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라며 "짧은 시간 급속도로 성장했고 세계 최고의 교육 수준과 인력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파월 교수뿐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만난 현지 전문가들의 반응도 한결 같았다. 제조업 전반의 수준이 높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보유한 점에서 한국같이 잘 하기도 힘들 것이란 전문가도 있었다.

물론 선진국이라 불리기에 부끄러운 민낯도 존재한다.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으로 세계 해운시장에서 정부와 선사의 대외인신도가 떨어지고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에 국가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모습 등을 그 사례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성취를 폄하하거나 비하할 필요도 없다.

◇"기존 모델의 한계...장기적 비전 필요" = 선진국은 국가 시스템을 받쳐주는 법과 원칙 등 기본이 탄탄한 나라다. 선진국들은 수백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졌지만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극적으로 도약하느라 그 과정이 생략됐다.

그래서 해외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세계를 이끌 선두주자로 나서기 위해 그동안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에 기반해 시스템을 혁신하면서 동시에 다져 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행착오에 기반해 긴 호흡을 갖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국가 체계를 다듬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국가에 대한 신뢰도 점차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간에 이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달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랜달존스 OECD사무국 선임이코노미스트는 "근본적으로 한국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경제에 대해 "대기업에 의한 생산·수출 주도 성장, 전통적인 캐치업 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며 양적인 지표보다 질적 지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선진국들이 가장 차이 나는 대목 하나로 OECD 웰빙지표인데 "특히 일과 삶의 균형 지표는 OECD 국가에서 가장 긴 업무시간을 반영하고 있다"며 "일과 삶의 균형을 달성해야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 고용률을 높일 수도 있는 등 근본적인 혁신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캐치업 하느라 놓쳤던 부분에 대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도미니크 겔렉 OECD 과학기술산업국 STI(과학기술혁신) 과장은 "한국의 문제는 전자, 자동차 등 너무 한정적인 분야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라며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타개하려면 스타트업 기업을 독려하고 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순수 과학기술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도 했다. 당장 이익을 가져다주진 않더라도 후에 사회적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리스크와 저항이 뒤따르지만 지금 한국 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 필요한 건 혁신"이라며 "돈이 안 되더라도 혁신을 추구하고 이를 토대로 기초를 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민이라는 정체성 =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라고 여긴다"고 하면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이 잘했거나 현재 잘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저개발국가에서 선진국으로 국가위상이 변했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데, 그러한 '선진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이런 지적을 내놓았다. 김재훈 주 영국 런던 대사관 재경관은 "선진국에 대한 기준이 많이 있고, 그 중 우리가 잘하는 분야가 있다"며 "우리가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 국민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임스 모리슨 런던정경대 교수 역시 "짧은 기간 내 개개인이 힘을 모아 지금 이렇게 나라를 일궈 놓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한국만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정부와 기업이 이런 역사와 정체성을 살려 보다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선진국은 유토피아가 아니며 모든 면에서 한국을 능가하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인식하는데 그런 환상과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한국이 선진국임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개개인의 자부심과 함께 정부는 국가에 대한 신뢰를 형성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원칙을 한 번 세우면 끝까지 준수하고 국민들의 입장에서 정책 결정을 해 국가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혁종 코트라 유럽지역본부장은 그 대표적인 선진국가로 스위스를 꼽았다. 오 본부장은 "스위스는 바텀업(Bottom-up) 시스템이 잘 돼 있는 국가 중 하나로 국민들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때론 의사결정이 더디다고 느껴질지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효율적인 길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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