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원 안 보냈는데, 올해 결심이 흔들리는 이유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 2017.01.03 10:00

[소프트 랜딩]초등학교 코딩 교육 도입을 바라보는 학부모의 한숨

편집자주 |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30대 후반의 직장인 A씨는 현재 초등생과 유치원생 두 아이를 둔 아빠다. 총각 때부터 결심한 것이지만 자녀들에게 사교육 부담만큼은 주지 않기 위해 태권도 외에는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그런 결심이 흔들리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얼마 전 큰 애의 수학 문제를 도와주면서, '이걸 어떻게 저학년 초등생이 풀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문 길이만 4~5줄이 넘어가고, 어른조차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 조건을 이해한 뒤에 다시 사칙연산을 적용해 풀어야 하는 문제였다. 문제를 대하며 마치 벽에 부딪힌 듯 답답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학원에 보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A씨와 같은 세대만 해도 초등학교 수학 과정은 매우 단순했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가르쳐 주는 내용만 숙지하고 과제만 성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대입 수능 문제가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변별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통합교과적인 문제의 비중이 높이기 시작하면서 초중고 교육 과정도 덩달아 크게 변화됐다.

그 대표적인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스토리텔링 수학의 도입인데, 기존의 공식 암기나 문제 풀이 방식에서 벗어나 실생활이 반영되거나 종합적인 사고를 유도하기 위해 이야기로 문제를 설명하는 교육 방식이다.

물론 기존의 주입식 교육을 탈피한다는 취지 자체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에 무작정 스토리를 접목시키려다 보니 막상 언어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문제에 접근하기도 전에 혼돈에 빠지고 문제 풀이를 포기하게 된다.

게다가 초등학생에게 기초 연산 문제에 불필요한 풀이과정까지 굳이 쓰라고 요구하는 문제도 있다. 그냥 간단히 연산 원리를 적용해서 해답을 적으면 될 것을 억지스럽게 만든 과정을 거쳐서 문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과거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생각시(어린 대장금)가 음식을 맛본 후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대답했을 때,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묻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왜 홍시 맛이 나냐고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계산능력이 있음에도 언어능력까지 복합해서 요구하는 탓에 문제를 틀리고,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수학에 대한 자심감과 흥미가 떨어져 결국 수포자(수학포기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학원을 안 보내겠다 굳게 결심했던 A씨와 같은 부모들도 자녀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받은 주변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까지 척척 풀어내는 것을 보면 결국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학원 교육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막상 학교 선생님들은 공식을 설명하고 기초 문제만 풀어주는 데 그치며, 문제 해결에 필요한 내용은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요즘 학교 수업의 모습이다.


특히 중·고등학교의 경우 3학년때 입시준비에 올인하기 위해 2학년 전까지 수업 진도를 마치는 게 보통이다. 심지어 중3 학생들은 고등학교 진학 전에 고등학교 과정을 미리 선행해 마치는 경우도 많다. 학교 선생님들은 형식적으로나마 진도 빼는 데 열중하고, 때론 '학원에서 다 배웠지?'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 모습이 흔하다.

학생들도 학교보다 학원 수업을 더 신뢰하고 학교 숙제보다 학원 숙제를 더 중요시 여긴다. 학원에서 늦게까지 수업을 받고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다보면 잠이 부족한 아이들은 오히려 학교 수업시간에 잠을 보충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 교실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이 아무리 학원에 보내지 않으려고 결심을 한다해도 대학에 보내려면 결국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는 2018년 초등학교 과정부터 SW(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이른바 코딩 교육을 도입한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과연 코딩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얼마나 될지, 코딩 교육을 위한 기자재와 소프트웨어 등 인프라는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반면 학원의 메카로 불리는 대치동과 목동을 중심으로 초등생을 위한 코딩 학원까지 이미 생겨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코딩까지 초등교육 과정에 포함될 경우 학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학생들을 평가하게 되고, 결국 부모들은 내 자녀가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어쩔수없이 코딩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수학과 달리 코딩을 할 줄 아는 부모가 거의 없지 않은가.

정부의 교육예산은 한해에 6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부실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한 공교육으로 인해 부모들은 한해에만 무려 40조원에 달하는 돈을 사교육 시장에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비용과 돈을 쓰고 대학에 진학시켜도 결국 수많은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또다시 학원가를 전전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학원 공화국"이라는 오명과 "한국인이 노벨상을 타려면 노벨상 학원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웃지 못할 비아냥마저 듣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우리 아이들은 학원이 아니면 정상적인 교육이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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