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이주자가 창조적 인간으로서의 노마드는 아니었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노예로 잡혀 신대륙으로 강제 이주 됐고 아메리카 원주민은 자기 땅으로부터 쫓겨나 길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의 극한에 몰린 아프리카·중동 난민들이 난민선에 오르고 있다.
저자 조일준은 이들을 '호모 미그란스'(homo migrans) 즉 '이주하는 인간'으로 분류했다. 탐험하고 정복하기 위해 떠나는 '호모 노마드'와 달리 '호모 미그란스'는 정착하기 위해 떠난다.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땅을 밟고자.
저자는 신문사 국제부 기자로 2011년 이집트 '아랍의 봄'과 2015년 파리 테러를 현장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자연스레 이주와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의 눈에 비친 난민들의 이주는 자신은 물론 가족과 후대의 미래를 건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그 절박함을 전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 시킨 이가 바로 세 살 짜리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였다. 아이의 작은 몸이 해변가에 싸늘하게 엎드려 있는 모습이 서구의 언론 지면을 장식한 뒤에야 시리아 난민 문제는 유엔 정기총회 핵심 안건에 오를 수 있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5년 전세계 강제 이주민 수는 6530만 명에 육박한다. 지구촌 인구 113명 중 한 명은 난민이거나 난민 신청자인 셈이다. 특히 시리아는 전체 인구 230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나라 안팎을 떠도는 처지다.
저자는 이주란 본질적으로 '어떤 낯선 집단이 낯선 환경에서 다른 집단과 맞딱트리는 사태'라고 설명한다. 전혀 다른 인종, 종교, 문화권, 가치관으로의 '침투'인 셈이다. 그래서 이주자들에 대한 적대와 환대는 한 사회의 '다름'에 대한 표용력을 기준으로 갈린다.
그러나 난민에 포용적이었던 유럽도 최근 얼굴 표정을 바꾸고 있다. 잇따르는 IS 테러 공포와 이에 편승하는 극우 정당의 득세 속에서 난민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무슬림은 다 범죄자' 라거나 '난민이 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파시즘적 구호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고 있다.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꼬마 난민 아일란은 잊혀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이주 문제의 제반을 차근차근 아우른 저자는 책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조선족은 그저 '말 통하는 값싼 노동자'로 취급하지 않았나. 말도 통하지 않는 아랍인 동남아인들에게는 노골적인 혐오의 시선을 보내오지 않았나.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조일준 지음.푸른역사 펴냄.448쪽/2만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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