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로 온 것은 10년 전쯤이다. 우연히 블로그에서 그녀를 보게 되었고,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 그림들은 흡사 여성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빠져 있었다. 이번 여름 예술의 전당에서 ‘프리다 칼로전’을 본 후로 나는 또 한 번 그녀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행복보다는 슬픔의 유전자로 가득한 삶이 주는 어떤 영감이 나를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불우함으로 가득한 삶. 그녀는 여섯 명의 딸 중 셋째로 태어났으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유모의 손에 키워진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핍박과 착취를 당하고 있던 멕시코 역시 디아스 정권의 장기적인 독재와 폭정, 흉작으로 몹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녀에게 불운의 그림자는 너무 일찍 찾아왔다. 여섯 살 되던 해 척추성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 불구가 된다. 그리고 열여덟 살 하굣길에 버스사고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전혀 다른 길로 흘러든다. 그 사고로 프리다는 허리 쪽 척추가 세 군데나 부러졌고, 왼쪽 발 11군데 골절상, 오른 발은 탈구되었고, 왼쪽 어깨는 빠지고 골반뼈도 3군데나 부러졌으며, 버스 손잡이용 쇠막대는 자궁을 관통했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어머니가 병실 침대에 달아준 거울로 자신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프리다는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 멕시코 최고 명문교육기관인 국립 예비학교 프레파라토리아에 들어간다. 하지만 큰 사고로 인해 화가의 길로 들어서고, 그곳에서 평생 지울 수 없는 또 하나의 상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게 된다.
무려 21살이나 연상이었던 디에고는 바람둥이인 데다 세 번째 결혼이었다. 디에고는 공산당원 활동과 함께 주로 벽화를 그렸고, 프리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하지만 프리다의 여동생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등 프리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이혼한다. 그러나 또 재결합하는 등 디에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처이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디에고. 프리다가 디에고에게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술이라는 알 수 없는 공기였을까 사랑이었을까.
그녀의 그림 ‘나의 디에고’, ‘디에고와 나’, ‘디에고와 나 그리고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몇 개의 작은 상처들’에서 디에고는 지울 수 없는 화인처럼 박혀있다. 프리다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디에고는 늘 다른 여자를 꿈꾸는 눈이 세 개인 괴물이다.
또한, 그녀는 여자로써 아이를 낳지 못하고 몇 번의 유산의 아픔을 겪는다. ‘헨리포드 병원’, ‘프리다와 유산’, ‘나의 탄생’은 그렇게 자신과 이어지지 못하고 피 흘리며 사라져버린 아이를 그리고 있다. 그녀의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피의 흔적’은 어쩌면 그녀의 삶 혹은 멕시코의 태양처럼 존재의 상실로 인한 또 하나의 페르소나인지 모른다.
* 대전 둔산도서관 선정
◇프리다 칼로 = 박서보·오광수 감수. 재원 펴냄. 64쪽/1만5000원.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