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향긋한 솔내음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타고 내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올해 4월 큰 맘 먹고 밤샘 근무를 한 피곤한 몸으로 왕복 7시간 거리를 달려 다녀온 청도 운문사의 들머리 솔숲 길에 늘어서 있던 아름드리 노송들이 떠올랐다.
언제부터였는지 사찰이 막연히 좋아 산사 기행을 많이 다녔다. 빛바랜 단청, 문화적 가치를 지닌 전각이나 불상, 탑, 부도도 좋았지만, 불혹을 넘기면서 더더욱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다름 아닌 산사를 광배처럼 둘러싸고 빛을 내 주는 ‘숲’이었다.
열매로 다람쥐, 너구리 등 산짐승의 배를 채워주는 도토리나무나 잣나무여도 좋고, 제멋대로 부는 바람의 털을 골라 잔잔하게 만들어주는 소나무여도 좋다. 거기에다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우락부락한 근육을 지닌 여유 넘치는 모습의 고목이면 더 좋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간다는 나무. 일주문 기둥이며 사천왕상으로 현신한 나무들과 새로이 자라난 나무들이 그들 주위를 호위무사처럼 시립하고 있으니 오래된 사찰숲은 모든 것들이 살아 있는 셈이 아닌가. 내가 사찰숲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책은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한국 사찰숲의 시작,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광복이후 사찰숲의 역사와 함께 벌목·식재의 상세한 통계자료를 소개했다. 낯선 용어들, 많은 숫자와 도표가 등장하여 살짝 어렵기도 했지만, 그간 내가 얼마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했었는가도 다시금 알게 해 주었다.
저자는 미래의 ‘사찰 순례길’ 활성화 방안도 모색한다. 순례길은 어떤 길이어야 할까? 정신적 안정과 육체적 평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부처의 행적을 기릴 수 있고, 믿음에 대한 다짐과 속죄 행위를 통해 제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길이면 더 좋다.
결국 순례길은 잊고 있던 자신을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웃 나라 일본을 예로 들며 그동안 잊힌 사찰과 사찰 사이의 순례길을 개척하자는 의견을 피력한다. 순례객 100~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까지 건립을 하면 순례길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널리 퍼져 매년 10만 순례자가 찾는 코스가 될 수도 있다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등과 비교해 볼 때 아직 정비가 완벽하게 되진 않았지만 걸어볼 만한 사찰숲길들이 얼마나 많은지, 책 속에 소개된 곳만 따져 봐도 손가락이 모자랄 판이다.
해인사, 내소사, 운문사 같은 곳도 좋고 아직 못 가본 송광사, 통도사, 백양사, 수종사, 월정사는 물론이고 초의선사가 차를 들고 오갔다는 해남 대흥사에서 강진 백련사로 이어지는 숲길은 꼭 한번 걸어보고 싶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미지의 사찰숲을 찾아 훌쩍 떠나보련다.
* 서울 상계문화정보도서관
◇ 한국의 사찰숲=전영우 지음. 모과나무 펴냄. 373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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