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이 2011~2012년 발간한 '한국기상기록집 1,2'에 따르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지진은 주로 개성, 경주, 평양같이 역사시대 수도였던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살고 비교적 정보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에 기록이 많을 뿐, 실제로 이 지역에서 지진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발생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연구는 전제했다.
인명피해가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된 것은 779년(신라 혜공왕 15년) 3월 발생한 지진이다. '삼국사기'와 '증보문헌비고'에는 "경도(경주)에 지진이 있어 민옥이 무너지고 죽은 자가 100여 명이었다"고 기록돼있다. 대부분 지진기록과 달리 이 지진에 대해서는 사망수가 기재돼 있어, 인명피해가 많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주는 개성과 함께 유독 역사에 지진이 많이 기록된 지역이었다. 100년 10월 '삼국사기'와 '증보문헌비고' 기록에는 "경도(경주)에 지진이 있어 민옥(民屋)이 쓰러지고 죽은 자까지 있었다"고 적혀있으며 이와 비슷한 기록이 수도 없이 많다.
특히 1036년 발생한 지진은 눈여겨 볼 만하다. "개성, 동경(東京, 경주) 및 상주, 광주에서 지진으로 말미암아 수다한 가옥들이 훼손됐고 동경에서는 3일이 지나서야 지진이 멎었다"고 적혀있다.
지금은 아무도 우리나라에서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진 해일에 대한 기록도 역사에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의 1643년 7월24일(조선 인조 21년 6월9일)에 발생한 지진 기록에는 "울산부(울산)에서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으며 바다 가운데 큰 파도가 육지로 1, 2보 나왔다가 되돌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표현이 있다.
또 1681년 6월12일(조선 숙종 7년 4월26일)에도 "지진이 발생했을 때 파도가 진동하고 끓어올랐으며, 해변이 조금 작아져 마치 조수가 물러난 때와 같았다"고 적혀 있어 위 두 지진에 지진해일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같은 판내부 지역에서는 수백~수천 년 간격으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는데 이에 비해 현재의 기록은 약 30여 년의 관측기록에 불과하다"며 "역사문헌 조사에 의한 역사지진이나 지질조사에 의한 지질시대 지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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