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전통 '제사'가 집안 화목 해치는 지뢰?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이경은 기자 | 2016.09.17 07:01

[서초동살롱<133>]제사 둘러싼 가족간 갈등 백태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3일 전북 고창군 덕화면 유점마을에 거주하는 갱정유도회 이제헌(37), 이종현(30)씨 부부가 전통복장을 입고 차례상에 올릴 제기를 닦고 있다. 갱정유도회는 유점마을과 내사마을 등에서 20여 가구가 전통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민족의 명절 추석이 지나갑니다. 추석 연휴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나요. 아무리 가족들 사이라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경우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가장 큰 갈등은 추석 행사인 '제사'를 둘러싸고 벌어지곤 합니다.

제사를 둘러싼 갈등은 부부, 형제, 더 나아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일어납니다. 이 갈등이 심해지면 법원에까지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은 제사로 인해 이혼소송에 이르게 된 부부, 제사주재를 둘러싸고 소송까지 벌인 형제의 이야기 등을 해보려 합니다.

◇"제사를 모시지 않겠다"는 며느리, 이혼사유 될까

제사를 놓고 가장 갈등을 벌이기 쉬운 것이 부부사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집안에 기독교를 믿는 며느리가 들어갈 경우 집안 사람을 넘어 주변에서까지 걱정을 보내곤 합니다. 시댁과 며느리 사이의 갈등은 불보듯 뻔하고, 이 갈등은 남편과의 갈등으로 쉽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보통 며느리가 제사음식 만들기에는 참여하되 절은 하지 않는 정도에서 타협을 하곤 하는데요, 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부사이가 파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로 인해 이혼소송을 벌이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 때문에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이혼사유가 될까요.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 '신앙심의 외부적인 실천행위가 혼인 및 가정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것일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판단합니다. 신앙생활이 과하지 않은 수준이라면 이혼 사유는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고 그 교리에 따라서 제사의식에 참여하지 않은 정도로 신앙생활을 한 것은 이혼사유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이 있다고 합니다.

◇"제사 내가 지내겠다" 형제들간 분쟁, 왜?

이와는 반대로 형제들이 서로 제사를 지내겠다며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 재산 문제가 뒤에 있습니다. 제사주재권자에게는 분묘가 있는 금양임야 등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양임야의 경우 일정부분 상속세가 면제되기도 해 갈등의 불씨가 된다고 합니다.

이복형제간 제사주재권을 둘러싸고 법적 다툼을 벌인 사건은 법조계에서도 유명합니다. 최모씨의 아버지는 본처와 사이에 3남3녀를 뒀으나 집을 나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1남2녀를 두고 44년을 함께 살다 2006년 사망했습니다. 최씨의 이복동생들이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유해를 경기 모 공원에 매장하자 최씨는 소송을 냅니다.


이 소송에서 1, 2심은 “유체ㆍ유골의 소유권은 민법에 따라 제사주재자에게 있고 관습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손에게 제사 주재자의 지위가 인정된다”며 원고승소 판결했습니다.

대법원도 최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유는 달랐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유체ㆍ유골은 민법상의 제사용 재산인 분묘와 함께 제사주재자인 장남 최씨에게 승계돼야 한다"며 적자 여부와는 상관없이 장남이기 때문에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적장자가 우선적으로 제사를 승계하던 종래의 관습은 가족 구성원인 상속인들의 자율적인 의사로 이루어진 협의결과를 무시하는 것이고, 적서 간에 차별을 두는 것이어서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한 오늘날의 가족제도에 부합하지 않아 더 이상 관습법으로서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제사 모시겠다고 돈 받아갔다" 부자간 반환소송도 벌어져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제사비 반환 소송이 벌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슬하에 4남 3녀를 둔 이모씨는 경북 예천군과 안동시 일대에 소유했던 부동산이 경북도청 이전으로 수용되면서 보상금 10억 원을 받았습니다. 2011년 9월 추석을 맞아 찾아온 장남은 보상금 중 1억 원을 달라고 요구하다 거부하자 부모를 폭행했습니다.

이후 이씨 부부는 넷째 아들의 집에서 지냈고 같은 해 11월 넷째 아들에게 3억5000만원을 줬습니다. 넷째 아들은 돈을 받은 후부터 제사, 명절 차례 등을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년이 지난 후 일체 제사와 차례를 지내지 않았고 이씨는 "3억원은 제사를 지내는 조건으로 준 것"이라며 이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3억원을 증여라고 본 것입니다. 재판부는 "넷째 아들 집에 거주하던 이씨 부부가 이 아들을 특별히 여겨 증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가부장제도가 해체되는 과도기적인 시기, 제사문제는 이처럼 많은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지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문화인 제사를 갈등이 생긴다는 이유로 없앨수도 없는 노릇. 이럴 때야 말로 가족들간 대화가 필요한건 아닐까요. 명절에 해야 할 대화는 '결혼 언제 할거냐'는 질문이 아니라 갈등을 풀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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