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지안의 시대

머니투데이 박중제 메리츠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 | 2016.09.05 15:00

[머니디렉터]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박중제

45년전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우리는 모두 케인지안이라고 선언했다. 생필품 가격, 임금, 임대료 등을 동결하고 달러의 금태환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선언한 말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10여년이 지나 역시 같은 공화당의 로럴드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정부가 문제 그 자체라고 일갈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세금 인하, 규제 완화 등을 주창했고, 이것이 지난 40여년간의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레이거노믹스의 요체였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케인지안의 시대가 펼쳐지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 대선의 양당 후보, 클린턴과 트럼프는 하나같이 정부의 강력한 투자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철학은 시간에 따라 진동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진동과 시대의 진동이 서로 맞물리면 거대한 공명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어떠한 경제적 사조에 대해 옳다 그르다 식의 도덕적 판단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시대적 가치가 가장 높은 사조가 옳고,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정신은 케인지안이라고 생각한다.

케인지안과 고전학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시장의 완전성'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거꾸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자의적 능력을 얼마나 신뢰하느냐가 두 사조의 가장 큰 차이이다.

애초에 케인지안은 시장의 실패로부터 출발했다. 대공황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정부 개입을 죄악시한 미국의 후버 대통령은 아마도 인간의 자의적 능력에 대한 신뢰가 약했을 것이다.

반면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두려움의 극복을 주장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가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루즈벨트의 문구를 인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83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의 실패를 인간이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투자자로서 우리가 케인지안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세계의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40여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흐름이 시작되는 것이며 따라서 금융 시장의 다수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케인지안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근거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시장의 낙관론은 이러한 큰 흐름의 변화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케인지안이 구조적 장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의 사조로는 구조적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과거 많은 사례에서, 적어도 성장률을 회복하는데 있어 케인지안적 정책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 EPI)의 조쉬 비벤(Josh Bivens)은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경기침체와 회복 사이클을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Why is recovery taking so long—and who’s to blame?”, Economic Policy Institute, Josh Bivens, 2016-8-11).

자료에서 조쉬 비벤은 2009년 이후 회복 속도가 유난히 느린 이유로 정부의 지출이 감소한 것을 꼽고 있다. 2009년은 경기 회복시기에 정부 지출이 줄어든 유일한 사이클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레이건 행정부 시기였던 1982년에 오히려 정부지출이 가장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문제 그 자체’라고 했던 레이건 행정부 시기에도 경기 침체 후 회복 과정에서는 정부의 지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또한 작은 정부를 표방했던 레이건 행정부 때 정부 고용이 7% 늘어난 반면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는 오히려 16%나 감소했다.

조쉬 비벤의 논문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심지어 레이건 행정부에서도 필요하면 정부가 지출을 늘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2009년 이후에는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적 교조주의가 판을 치며 정부의 지출을 '절대 악'으로 치부한 측면이 크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극단주의, 교조주의로 치닫게 되면 부작용을 일으키고 반작용을 가져온다. 올해 들어 두드러지는 케인지안의 등장은 신자유주의적 교조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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