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오늘… 미·소 냉전시대, KAL기 피격 '참사'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 2016.09.01 06:00

[역사 속 오늘] KAL 007편 착륙 3시간 앞두고…소련 공군 격추로 추락

1981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서 있는 사고 항공기 대한항공 007편/사진=위키피디아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탄 대한항공 015편은 알래스카의 앨커리지 공항에 잠시 멈췄다. 비행기에 연료를 채우기 위해서다. 비행기는 원래 타려고 했던 비행기였던 대한항공 007편 옆에 나란히 섰다.

대기실에는 007편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두 어린 자매가 있었다. 이들은 유달리 살가웠다. 옆에 앉아 수화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한국에서 만나자'라는 말만 남긴 채 그렌펠 자매는 먼저 007편에 몸을 실었다.

한국 도착 후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이 자매가 탄 비행기가 소련 상공에서 격추됐다는 것이다. 원래 타려고 했던 비행기라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대기실에서 스쳤던 수많은 007편 탑승객 중 생존자는 단 1명도 없었다.

소련을 강하게 비판했던 미국 공화당 의원 제시 헬름스는 그의 동료 스티브 심즈, 캐롤 J 허바드 의원들과 함께 가까스로 죽음을 피했다.

33년 전 오늘(1983년 9월1일),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사할린 인근에서 격추당했다. 이 사고로 비행기 안에 타고 있던 탑승객 269명은 모두 사망했다.

한국인 105명, 미국인 62명, 일본인 28명 등 16개국의 탑승객이 포함됐다. 특히 이 무렵 한미 상호방위조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하던 외국인들이 많아 피해가 컸다. 사망자 중에는 래리 맥도널드 미국 민주당 하원 의원도 있었다.

당시 대한항공 007편의 실제 운항경로와 정상 운항경로 비교/사진=위키피디아

이 참사는 항공기가 소련 영공을 침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사할린 인근 영공을 침해하자 소련 공군 소속 수호기 15의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항공기 유도 착륙을 명령받는다.

오시포비치는 항공기 300m 뒤까지 쫓아가 유도 착륙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항공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경고를 보내기 위해 통상탄 4발을 쐈다. 그러자 갑자기 항공기는 마치 자신을 따돌리는 듯 고도를 높여 올라갔다.


이때 오시포비치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관제소로부터 '격추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것. 오시포비치는 항공기를 향해 미사일을 쏘았고 대한항공 007편은 서서히 밑으로 떨어졌다.

이 사실을 안 한국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미 5년 전인 1978년 4월21일 대한항공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해 강제 불시착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군이 격추시킨 첫 사례라는 것만으로도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은 미국을 통해 소련 정부에 거세게 항의했지만 소련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정찰기로 알고 격추시켰다'는 것이었다.

오시포비치는 1996년이 돼서야 자신이 격추시킨 항공기가 민간항공기임을 알았고 당시 민간항공기를 위장한 정찰기인 줄 알았다고 밝혔다.

이 사고는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새로 취임했고 소련은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항공기가 격추당한 사할린에서는 미국과 소련간의 첩보 작전이 수없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두 나라 간의 냉전관계는 더욱 심해졌다.

한국에서는 소련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여러 방송프로그램에서 소련을 적대적으로 다루는 내용이 전파를 탔다. 한달 뒤 발생한 미얀마 아웅산 묘역 테러사건과 맞물려 반공태세는 더욱 강화됐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소련과 한국의 냉전관계가 풀리면서 사고에 대한 정보의 일부가 공개됐지만 사건에 대한 명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일부 항공 전문가들은 KAL 탑승객의 생존을 주장하기도 했고 일부는 당시 미국 정찰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는 대한항공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고 후 하늘색 바탕에 남색 글씨로 디자인된 항공기 외관 디자인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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