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거인과 항공모함…두 H그룹 이야기

머니투데이 배성민 증권부장 | 2016.08.31 14:20
머니투데이 증권부장
대기업 관련 구설이 나올때마다 그 기업들이 얼마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따져보게 된다. 연초부터 경제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두 H그룹도 꼭 그렇다. 구분이 쉽게 그룹 분할이 이뤄지기 전 덩치로 H그룹과 h그룹으로 구분해 보자. 계열분리 이후로 열심히 활동하는 기업과 임직원을 고려해 이니셜만 쓴다.

# 최근에는 새로 지은 집이 거의 없는데도 사람들은 H그룹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한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H아파트 때문에 지역 전체 집값이 들썩이기도 한다. 고층 건물에서 1층으로 H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H사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H백화점에 가서 H카드를 긁고 물건을 산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때도 차체가 H사 제품일 때가 많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었지만 H증권에서 나라를 살린다는 펀드를 들때도 있었다. H자동차를 살때는 H보험을 들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자동차에 넣는 기름은 H그룹 조선회사가 만든 배에 실어와 H정유에서 팔리는 경우도 꽤 있었다. 몸이 아플때는 H그룹이 세운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환자도 많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는 이들은 H건설이 깔아놓은 고속도로를 이용하곤 했다.

#해외를 나갈때는 단연 h그룹이다. 십수년 전만해도 h항공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못 가는 곳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상당부분은 그렇다. 세계 1등이라는 공항시설의 일부를 운영하는 것도 h그룹이다. h항공에 승무원으로 입사하기 위해 외모를 가꾼다는 이들은 지금도 줄을 섰다.

h그룹 조선회사와 보험회사는 국내 1호 조선사와 보험사였다. 밀이나 철광석 같은 원자재를 실어올때는 h해운이 실어나르는 경우가 많았다. H그룹 회사들에 비해 후발주자긴 했지만 h증권에서 주식을 사고팔거나 h그룹 건설회사에서 짓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사는 이들도 많다.


# H그룹과 h그룹의 선대회장은 모두 C회장이었다. 그들은 헐벗은 나라를 반석에 올려세운 재계의 거인으로 불렸다. 20 ~ 30대에 사업에 뛰어들어 해당 분야에서 일등기업을 일궈냈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 이란-이라크전 같은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도 신용으로 사업을 키웠고 수십만의 근로자들을 고용했다.

병원과 대학을 지어 사회환원에도 앞장섰다. 사업의 성공이 다복함으로 이어졌는지 자식들도 많아 손이 귀한 집안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대가족을 이뤘다. 친손자, 외손자, 며느리, 사위까지 다 찍으려면 가족사진이 꽉 찰 정도였다.

# 두 C회장은 각각 2001년과 2002년 별세했다. 하지만 생을 마감하기 전후로는 개인적인 아픔도 겪어야 했다. 반석에 올려놓은 사업을 잘 이어받으리라고 생각했던 자식들 간에 조금씩 틈이 벌어진 것이다. C회장의 자식들 중 한명씩은 여러 어려움으로 세상을 등지는 일도 있었다. H그룹과 h그룹은 쪼개졌다. 아버지 세대가 일궈놓은 H그룹과 h그룹이 아들.딸 세대에서 예전같지 않다. 기업을 키우는 것보다는 내몫이 많아야 한다는 다툼이나 자존심 싸움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줬다.

# 2016년 경기위축과 물동량 감소 등이 겹쳐지며 해운경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국적선사로 전세계로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그중 상당수는 계열사 생산품이거나 부품이었다)을 실어나르던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나란히 채권단의 손에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상황이 됐다. H그룹과 h그룹 테두리에서도 떨어져나갔다. 채권단의 주축은 국책은행이 차지하고 있으니 세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양 그룹의 자동차와 비행기를 이용했던 국민들의 세금 말이다. 사업보국까지는 아니어도 가족들 중 한두명씩은 손해를 보지 않으면 된다는 무책임에 선대회장들은 뭐라고 할까. ‘이봐 해 봤어’ ‘이 세상에 길을 여는 것이 평생의 내 사업이다’ 두 거인 C회장의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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