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잘 몰랐던 ‘선배 작가’의 얘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고 나서, 김별아(47) 작가는 자신이 못하면 다른 여성 작가들에게 맡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집필을 권유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이랬다. “너무 비극적이어서 고통스럽다.”
베스트셀러 ‘미실’로 시작해 자의식 강하지만 고통 속에 살았던 여인의 삶을 오랫동안 조명해 온 김 작가는 결국 자신의 일임을 깨닫고 손을 대기 시작했다. 탄실 김명순.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평가는 기생의 딸로 태어나, 성폭행을 당한 뒤 사회적 비난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근대 최초의 여성 소설가라는 점뿐이었다. 이 우울하고 그늘진 삶 속에 작가라는 본연의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김 작가는 아직도 진행 중인 그의 자료들을 속속 파헤치며 그가 쓴 자전적 작품 속 이야기를 그럴듯한 상상력과 연결해 보기 좋은 소설 ‘탄실’을 완성했다. 잊힌 탄실을 복원해내는 과정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김 작가의 욕망은 제대로 된 ‘문학적 평가’다.
“근현대 문학사에서 탄실이 누락되거나 삭제된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완성된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로 등단할 때부터 모두에게 전방위적 공격을 받았다는 거예요.”
기생 어머니가 부잣집의 첩으로 들어가 낳은 딸 김명순은 일본 유학을 3번이나 갈 정도로 신식 교육을 받았지만, 어릴 때부터 천한 신분의 오명을 쓰고 안으로 숨어지내기 일쑤였다. 19세 때 일본 유학에선 육군사관학교 생도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이 일로 남성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탄실의 이미지는 자유연애주의자 또는 방탕한 여자로 왜곡됐다.
“그의 일생은 괴소문, 추문, 염문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어요. 김기진, 김동인, 방정환 등 소위 글 잘 쓰는 작가들까지 합류해서 지면을 통해 그를 공격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성폭행의 피해자임에도 왜곡된 인신공격의 대상으로 살았던 한 여인이 그것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글 쓰기 외엔 없었던 셈이에요.”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이지만 탄실이라는 여성은 그 식민지 남성의 또 다른 식민지였다는 표현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탄실은 남성 지식인들의 비틀어진 욕망으로 여성을 매도하는 분위기에 저항해 ‘탄실이와 주영이’라는 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일본 정신병원에서 미쳐 죽을 때까지(1951~1957년 사이 추정) 그에겐 아버지도 남편도 아들이라는 어떤 방패도 가지지 못했다”며 “그의 비극적 삶에 가려진 작품이 제대로 평가되길 바란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탄실의 작가적 삶이 지금과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데뷔 24년 차 작가인데도 데뷔할 땐 성희롱 등 남성 중심의 폭력 문화가 적지 않았거든요. 그것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적도 있고요. 그런 얘기들이 아주 먼 옛날 얘기 같지만, 작품이 많이 팔리기 전까지 여성 작가의 삶은 여전히 탄실의 시대와 다르지 않았죠.”
다음 작품에 ‘여성’이 다시 주인공으로 떠오를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김 작가는 그러나 “누락된 역사에는 관심이 많다”며 “‘왜’라는 질문은 계속 던지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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