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중심' 교통시스템, 보행자 사망사고 주범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 2016.08.29 04:30

상반기 전국 교통사고 사망자 1957명 중 보행자 37.6%, OECD 평균 3배

27일 오후 7시30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한 교차로. 사람들이 보행신호를 받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지만 우회전해 횡단보도를 지나치려는 차들이 줄지어 있다. 앞선 차가 보행자들에 막혀 움직이지 못한다. 뒤에서는 짜증섞인 경적소리가 들려온다. 부담을 느낀 앞 차는 사람들을 피해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현행 도로교통법 상 차량은 보행자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경우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우회전 통과를 할 수 있다. 우회전한 직후 만나는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이더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통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이 올초부터 '보행자 교통사망사고 절반 줄이기'를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교통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 교통사고 사망자 1957명 중 보행자는 736명으로 37.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보행 중 사망자 비율(38.8%)과 비슷한 수준이다.

보행자 교통사고는 매년 5만건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 사망자 수도 매년 2000명에 육박한다. 지난해에는 보행자 교통사고 5만980건이 일어나 1764명이 죽고, 5만2270명이 다쳤다.

한국 보행자 사망사고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OECD '한국도로의 포용적 성장견인과 교통안전'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3년까지 한국 인구 10만명당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5.2명. 폴란드(4.4명)나 헝가리(2.6명), 그리스(2.3명) 보다 높은 수치다. 네덜란드(0.5명)나 아이슬란드(0.6명) 등과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많다. 조사 국가 평균은 1.57명으로 집계됐다.

경찰청은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올초 2018년까지 보행자 사고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4개 분야 20개 세부과제를 발굴해 추진 중이지만, 아직까지 큰 효과를 보진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행자 중심이 아닌 차량 위주의 교통 시스템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만 차가 일시정지한다. 1973년 도로교통법 시행세칙이 개정되면서 정면 신호가 빨간불이더라도 우회전을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비보호 우회전을 허용하는 나라는 미국 일부 지역과 캐나다, 한국 등 세 나라 뿐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차들이 움직이는 곳들과 기본적인 관점이 다르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5년간 발생한 보행자 교통사고 중 무단횡단 사고가 약 40%에 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보행자 교통사고를 통계분석한 결과, 2010~2014년 연평균 391명이 무단횡단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행자 입장에서는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배치된 횡단보도나 육교, 지하도를 이용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무단횡단을 하는 것"이라며 "네비게이션이나 표지판도 자동차 중심이라 보행자는 뒷전으로 밀려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차량 제한속도도 높은 편이다. 국내 도심지 내 차량 제한속도는 시속 60km다. 35개 OECD 회원국 중 도시 내 차량 제한속도가 시속 60km 이상인 나라는 한국과 칠레 뿐이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보행자가 시속 30km 이하 차량과 부딪쳤을 때 생존율은 90% 이상이지만, 시속 45km부터는 40% 이하로 낮아진다.

프랑스 파리는 도심지 도로 3분의 1에서 제한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시켰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는 시내 도로 80% 제한속도를 시속 20마일(약 32㎞) 도로로 정비했다. 국내에서는 최근 세종경찰서가 세종시 내 주요 도로 최고제한속도를 시속 50km로 하향조정(기존 시속 60km)하고 12월말부터 단속에 들어간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심 최고제한속도를 시속 50km 이하로 제한한 것이다.

임 연구위원은 "운전자들이 보행자를 우선 생각하는 인식을 가지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교통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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