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탄생 110주년 기념전 준비하는 '조용한 손자'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 2016.08.27 03:08

[인터뷰]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 "교육 통해 유산 알리는 역할이 조부의 뜻"… 9월 10~10월 23일 DDP에서 '올드 앤 뉴'

19일 보성고 교내에 위치한 간송 전형필 동상 앞에 선 간송의 손자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 /사진=김지훈 기자

지난해 9월 19일 경복여고 학생들은 특별한 인물로부터 간송 전형필(1906~1962년)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팔자(八字)형의 짙은 눈썹, 넉넉한 풍채의 강연자는 흑백 사진 속의 간송이 튀어나온듯한 외모다. 주인공 전인건(45·사진)씨는 간송미술문화재단(간송미술관 운영 법인) 사무국장. 그는 일제 강점기 재산과 젊음을 바쳐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의 장손이다.

“경복여고 한 교사가 학생들의 전시 감상문을 취합한 봉투를 보내왔어요. 그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간송문화전 3부’(진경산수화-우리 강산, 우리 그림전)를 관람한 학생들이 쓴 거였죠. 간송과 우리 문화에 대해 어린 학생들 나름의 관심과 궁금증이 빼곡히 적힌 글을 읽다 보니 저도 모르게 고무가 되더군요.”

그가 여고생들 앞에 선 이유다. 그는 ‘간송문화전 4부’(매난국죽-선비의 향기) 전에 경복여고 학생들을 초청,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의 가치를 들려줬다.

1906년 종로 4가의 대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간송은 평생을 바쳐 우리 문화재를 수집, 민족의 혼 그 자체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간송이 성북동에 세운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이 간송미술관의 전신이다. 미술관은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등 다수의 국보를 소장하고 있다.
간송 전형필(1906~1962년). /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재단


수줍음이 많아 집 앞 명패도 숯칠을 해 걸었다는 간송을 닮았는지 조용한 그는 미국 루이스 앤 클라크 칼리지 역사학과를 졸업(1999년)했다. 2010~2013년 간송이 지킨 문화재를 바탕으로 민족 혼을 연구하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 간송미술관(행정지원실장) 등에 재직했다. 2004년부터 간송이 설립한 동성학원(이사장 전성우, 부친) 사무국장과 산하 보성중고등학교 행정실장을 맡으며 조부의 뜻을 이어오던 터였다. 2013년 재단 설립 후에는 재단 사무국장으로서 부친(재단 이사장)과 함께 ‘문화보국’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가업을 이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자식에게 해야 할 일을 강제하지 않는 집안 분위기는 할아버지 대 이후에도 이어져 왔어요. 미국 유학으로 제가 남들보다 조금 늦게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업무로 조금씩 힘들어하시던 아버지 모습을 뵌 것이 계기가 됐어요. 곁에 함께 있어야겠다고 제가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재단은 ‘간송 아카데미’(가칭)를 준비하고 있다. 초중고 학생,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나 학부모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강좌 프로그램이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그 미의 가치를 보는 눈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서다. 그는 “교육을 통해 간송의 유산을 알리는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조부의 뜻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이 간송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예술적 가치가 높고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은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제294호). /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재단


재단은 오는 9월 10일부터 10월 23일까지 DDP에서 현대미술작가 30여 명과 함께 하는 ‘간송 탄생 110주년 기념전 올드 앤 뉴’(OLD & NEW) 전을 연다. ‘법고창신(法古創新)- 현대작가, 간송을 기리다’는 부제가 붙었다. 단순히 옛 문화재를 소개하는 전시가 아니라 한국의 미가 현대미술에서 어떻게 명맥을 이어왔는지 함께 조명하자는 의미다.

“할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에 맞서 후손들에게 남길 문화재를 모으고 지키셨다면, 1960년대 이후 아버지와 숙부(전영우 간송미술관장)는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팽배해진 물질 만능주의에 맞서 문화의 가치를 지키는 일에 매진하셨습니다. 2000년대 이후 간송미술관 앞에 길게 늘어선 관람객 인파를 보면 할아버지가 꿈꾸셨을 시대가 다가온 것 같아요. 한국이 세계 1위를 하는 분야가 늘고 자긍심도 커진 지금 우리 문화를 더 널리 전파하는 역할에 힘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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