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대동여지도와 구글지도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 2016.08.23 03:00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양이들에게 나라의 지도만큼 긴요하게 쓰일 것을! 함부로 백성에게 배포하겠다는 것인가.”(흥선대원군役)
“지도가 필요한 백성들이 언제든 쓰게 할 일념으로 만든 지도입니다.”(김정호役)

오는 9월 개봉될 강우석 감독 신작 ‘고산자, 대동여지도’(예고편) 속 대사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로 꼽히는 ‘대동여지도’와 이 지도를 완성한 고산자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24일 최종 결론을 앞둔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허용 정부 심사와 맞물려 개봉 전부터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애석하게 고산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없다. 때문에 백성을 위한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고산자와 지도를 하나의 권력 도구로 봤던 흥선대원군의 대립구도 역시 픽션에 불과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성을 폄하하기 위해 일본이 만들어낸 낭설에 가깝다는 얘기도 있다. 다만 대동여지도가 건물 3층 높이의 대형 지도를 22개 첩으로 나눠 휴대가 편하고, 복제가 쉽도록 목판으로 제작됐다는 점에서 지도제작에 대한 고산자의 열정과 애민(愛民) 철학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이다.

영화 속 스토리는 현재 구글 지도반출 이슈와 오버랩 되며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 공간정보 데이터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대동여지도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거리를 측정하기 쉽도록 했고 조선팔도 군현의 인구통계 정보는 물론 봉수 성곽위치, 군사시설까지 담겨 있을 정도로 정밀하다. 행정관료는 물론 먼 곳을 여행하는 일반 백성에게도 더 없이 요긴한 정보도구였을 게다. 반대로 영화 속 흥선대원군의 대사처럼 우리 국토를 노리는 외세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이보다 끔찍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바일 시대 지도 같은 공간정보 데이터의 가치는 더하다. 차량 운전은 물론 일상생활 속에서 약속을 잡거나 버스를 탈 때도 디지털 지도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용자가 알든 모르든 지도는 이미 생활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디지털 지도는 향후 자율주행차나 사물인터넷(IoT), 드론 등 미래형 서비스의 필수 인프라이기도 하다. 구글이 반출을 신청한 1대5000 대축적 수치 지형도는 이같은 디지털 지도 서비스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데이터다.


지도 반출 찬성론자들은 흥선대원군 시대 쇄국 정책식 지도정책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서비스 혁신을 가로막아 해외 관광객은 물론 안드로이드를 이용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는 디지털 지도 데이터가 정부 예산으로 제작돼 국내 사업자들에게 무료 배포되고 있는 사실을 외면한 주장일 뿐이다. 구글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국내에서 T맵, 네이버지도같은 상세 지도 서비스를 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과 제휴하거나 서버를 국내에 둔다면 말이다.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는 지도 데이터 활용에 대한 주권(통제권)의 문제다. 지도 데이터가 반출될 경우, 공간정보법상 간행심사 등 사전·사후 규제 집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구글이 서비스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개인 위치정보 오남용을 해도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대안이 있음에도 굳이 상세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가져가겠다는 것은 세금 회피와 지도심사 등 한국의 각종 규제에 갇히긴 싫은 구글의 과욕에 불과하다. 조선팔도를 돌며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고산자가 생각했던 건 백성(百姓)이다. 백성의 범주에 포함되는 건 국민과 국내 사업자이지, 차별적 특혜를 받으면서도 제 잇속만 챙기겠다는 구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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