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먹은 임금님의 최후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 2016.08.20 03:10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45] – 명종 : 외척에게 손발 묶인 불행한 임금

권경률 칼럼니스트.
1567년 음력 6월 9일 임금의 종묘 제사를 앞두고 대신들이 말리고 나섰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계절마다 한 번씩 제사를 지냈다. 문제는 그 해 여름에 무더위가 극심했다는 점이다. 이에 영의정 등이 간곡히 아뢰었다.

“종묘의 제사가 비록 중대사이기는 하나 옥체를 보존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한창 무더운 날씨에 두꺼운 예복을 입고 선왕들의 제실마다 (복잡한) 예를 강행하자면 그 수고로움이 배가됩니다. 이번에는 친히 제사 지내는 것을 그만두심이 마땅합니다.”

도대체 더위가 어느 정도였기에 유교국가에서 임금의 종묘 제사마저 만류했을까? 음력 6월은 절기상 소서와 대서가 들어있고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한여름이다. 그런데 1567년에는 실록에 햇무리까지 자주 언급되었다. ‘햇무리’는 태양의 둘레에 나타나는 테두리로 이글이글 타는 듯한 불볕더위를 동반한다. 실로 이례적인 무더위였다.

그러나 임금은 신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며칠 후 제사를 강행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조들에게 미안하여 심화가 끓어오르고 새로운 병이 생길 것이라는 이유였다. 극심한 무더위 속에 종묘 제사를 지낸 임금은 그 달을 넘기지 못하고 운명한다. 이 임금이 바로 드라마 ‘옥중화’에 마음씨 따뜻한 청년군주로 나오는 명종이다.

역사에서 명종은 재위기간(22년)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는 왕이다. 그는 1545년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는데 어머니 문정왕후의 치맛바람에 휘둘려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 윤원형 등 외척 세력이 주도한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많은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바람에 왕으로서 욕도 많이 먹었다.

백성들의 원성도 높았다. 왕실과 외척 세력이 불법적으로 토지를 넓혀나가고 수령들이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농민들은 땅을 잃고 산으로, 들로 유랑했다. 임꺽정이 황해도 구월산을 거점 삼아 신출귀몰한 행적을 드러낸 것도 명종 때였다. 그는 민가를 불태우고 사람을 찢어 죽이는 잔인한 면도 보였지만 백성들은 ‘의적(義賊)’이라고 칭송했다.


임금이라고 백성들의 비참한 처지를 몰랐을까. 명종은 사화로 피를 본 선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기대승, 이이 등 신진사림을 등용하여 민생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비 문정왕후를 등에 업은 외척 세력이 제동을 걸며 번번이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명종은 선정을 펴고 싶었지만 손발이 묶인 불행한 임금이었다.

명종의 불행은 1563년 순회세자의 요절로 극에 달했다. 세자는 그가 인순왕후와의 사이에 둔 유일한 아들이었다. 명종에게는 왕비 외에도 6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자식이라곤 순회세자 밖에 없었다. 아비로서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 그러나 세자는 어릴 때부터 허약했고 결국 13살을 넘기지 못했다. 명종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 슬픔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 실록에 따르면 명종에게는 ‘심열증(心熱症)’이라는 고질병이 있었다. 심장에 뜨거운 기운이 뭉쳐서 가슴이 답답하고 음식이 잘 내려가지 않는 병이었다. 순회세자의 요절로 명종의 심열증은 골수에 사무쳐 수시로 괴로움을 호소했다. 1565년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며 그 충격으로 한동안 의식을 잃기도 했다.

‘동의보감’에는 심열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무더위와 두꺼운 옷이라고 한다. 1567년 음력 6월 12일 이례적인 무더위 속에 예복을 껴입고 행한 종묘 제사는 명종에게 치명타를 가했다. 6월 26일 임금의 병이 악화되자 약방제조 심통원은 “평소 심열이 있는데다 더운 철을 만났으므로 서로 도와 생긴 것”이라는 소견을 밝힌다.

명종이 세상을 떠난 것은 이틀 후인 6월 28일이었다. 후사가 없었던 그의 쓸쓸한 보위는 조카뻘인 선조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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