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6.08.20 07:04

<31> 광개토대왕릉서 만난 '동북공정'의 흔적

편집자주 |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멀리서 바라본 광개토대왕릉/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면 느닷없이 ‘애국심’이 솟아오르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지중해의 소도시 뎀레라는 곳으로 성 니콜라스의 자취를 찾아갔다가 동상 하단부에서 태극기를 발견했을 때, 부다페스트 안드라시 거리를 걷다가 태극기가 펄럭이는 한국대사관 앞을 지날 때가 그랬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글 팸플릿을 발견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가움을 넘어서는 그런 감정을 애국심이라고 부르는 게 타당할지는 모르지만, 평상시 잘 느끼지 못하는 감정인 것은 사실이다.

반대로 가슴에 돌덩이라도 얹은 것처럼 답답하거나 서글픈 감정에 시달리는 순간도 있다. 몇 해 전, 옛 고구려 땅인 중국 퉁거우(通溝)로 광개토대왕릉을 찾아 갔을 때도 그랬다.

버스에서 내릴 때만 해도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광개토대왕 묘역은 기대를 웃돌 만큼 깔끔했다. 하지만 그런 반가움도 잠시, 그 또한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니 착잡한 심정을 가누기 어려웠다. 그런 마음으로 자세히 보니 급하게 공사를 마친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래도 광개토대왕비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괜스레 호흡도 거칠어졌다. 유리로 사방을 둘러싼 보호각 안에 서 있는 거대한 돌. 오래 그리워하던 사람이라도 만난 듯, 그 앞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의 능비이다. 1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대제국으로 건설한 왕 중의 왕.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인 장수왕이, 부왕이 세상을 뜬 지 2년 뒤(414년) 건립했다. 비석에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 씌어 있다.
보호각 유리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있지만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었다. 중국인 여성 관리원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었다. 밖에서 사진을 찍자니 유리창에 어리는 그림자 때문에 맘에 드는 컷을 건지는 게 불가능했다. 안타까웠지만 보호를 위해서 그런다는데 할 말이 있을 리가. 우리 조상이 남긴 비석을 남의 땅에서 봐야하는 것도 서글픈 일이었지만, 내 나라 땅이었다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보존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떨치기 어려웠다.

광개토대왕릉은 비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비에서 조금 올라가다 보니 작은 동산 크기의 능이 보였다. 흔히 보던 조선왕조의 능과는 크기나 형태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한 변이 66m라니 원래의 규모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초라한 모습의 돌무지일 뿐. 능은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여전히 돌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광개토대왕릉 내부. 텅 빈 널방에 지폐들만 깔려있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철제계단 끝에 녹슨 철문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다. 16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무덤은 과연 무엇을 간직하고 있을까. 하지만 묘 안에 들어간 순간, 감탄사가 아닌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다. 세모꼴의 천장, 때우듯 곳곳을 발라놓은 세 방향의 벽, 바닥에 있는 2개의 널방(관을 안치한 네모형의 방)… 그것이 전부였다. 쓸쓸한 세월의 그림자만 벽마다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바닥에는 지폐들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었다. ‘영험’한 대왕 덕 좀 보자는 소망이 담겼을 거라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서둘러 밖으로 나오니 넓은 평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가슴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집안(集安)이 눈앞에 있고 북한 땅도 저만치 보였다. 전에는 광개토대왕비와 능 사이의 초원에 400여 가구가 살았다는데, 고구려 문화유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면서 강제 이주시켰다고 한다. 그들이야말로 고구려의 후손이 아니었을까.

광개토대왕릉에서 내려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다. 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사는 것일까. 조상들이 기상을 펼치던 광활한 땅을 관광객이라는 이름으로나 와 볼 수 있다니…. 그나마 남은 땅에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으르렁거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동이 어떠니 서가 어떠니 아옹다옹하고 있는 내 나라의 현실. ‘떨어져서 봐야 제대로 보인다’는 말은 진리였다. 내 나라도 내 땅을 벗어난 뒤에야 제대로 보이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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