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사람의 일생은 그나마 다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오로지 짝을 만나 종족을 번식시키는 과정이 일생이라면 그 또한 얼마나 서글픈가 말이다. 오랜 세월을 암흑에서 견뎌내고도 위험을 피해 저녁에만 우화한 매미는 또 밤낮없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사투한다. 우리가 ‘매미 노래’라 하지 않고 ‘매미 울음’이라고 말해왔던 것은 어쩌면 참 잘한 일이다. 처절한 사투를 어찌 노래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았겠나. ‘구름 없는 파란 하늘이 낮아 보’인다는 전언에 앞이 암담했을 것이며 ‘푸른 숲의 손짓은 다정’하다는 전설이야 익히 아는 것이므로 얼마나 그리웠겠는가. 더워야만 울음이 가멸찰 수 있는 속성을 지닌 매미에게 ‘새하얀 폭염의 햇살’은 또 얼마나 그리웠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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