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평생교육? 학위 신분세탁 될라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 2016.08.16 03:10
기자 생활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지청구 하나가 학위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20년 동안 남들 다 하는 석사 하나 안 하고 뭐 했대. 그건 당신이 게으른 거지.” 인생 이모작을 새롭게 풀 수도 있는데 왜 준비를 안 하느냐는 충고였다.

‘OOO 최고위 과정’, ‘OOO 리더십 과정’ 등을 듣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변의 잔소리는 더 심해졌다. ‘그 시간에 정식 학위를 따라’는 거였다. “시간 남아서 한다고 생각하지 마. 평생교육이 자기한테는 해당 안 되는 줄 알아?”

흘러가는 뉴스에 지치는 일상이다. 체계적인 이론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생교육이라…. 이러던 중 ‘이화여대 사태’를 접했다.

이른바 ‘평생교육 단과대학’ 프로젝트. 학교 측의 철회 발표에도 총장 사퇴 압력까지 받고 있는 이대 사태는 학교 측은 물론 교육부가 톡톡히 망신을 산 사건이다.

“교육부 공무원들도 자기 애 입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를걸. 교육부의 명은 (사립대학에) 먹히지 않은 지 한참이야. 존립위기지. 그런데 돌파구가 생겼어. 이른바 평생교육. 명분이 있고, 시장이 있어. 하버드대학 같은 세계 유수 대학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잖아? 기존 사이버대학 식이 아니라 종합대에서 정식 학위를 받게 하자는 승부를 던졌지. 대학을 못(안) 나왔다는 건 불편함을 넘어서는 문제니까. 그런데 이 안이 애초 ‘공과대학혁신방안’ 논의 과정에서 나왔던 거 알아? 산학연계가 강조된 지는 한참이야. 공대생의 현장경험이 중요하듯 대학을 나오지 않고 현장에서 먼저 실무를 익힌 이들에게 이론교육 연계도 틀린 말이 아니야. 이게 교육부의 프로젝트가 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준식 교육부총리가 ‘공과대학혁신방안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거를 생각하면…. 다 좋아. 문제는 서열화돼있는 대학, ‘나 어디 나왔어’가 통하는 지독한 학벌 사회에서 문호가 그리 쉽게 개방되겠느냐는 거야.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까지 나서는 거 봐. 학교도 마찬가지야. 특히 명문대학에서 할 이유가 있을까? 서열화야말로 자신들의 존재 가치인데 자기 몸값을 스스로 내릴 리 없잖아? 딱히 재정이 궁핍하거나 특수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SKY 서성한’은 절대 나서지 않을걸.”


진행 과정을 안다는 지인의 ‘짧은 브리핑’을 들으니 ‘학위 수요’가 있다는 것만 보고 ‘장사가 될’ 거라고 판단한 교육부나 학교가 진짜 안일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대학에 가지 않거나 못 가고 사회에 진출해 현장에서 실무를 갈고닦은 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수명은 길어지고, 평생고용은 보장되지 않는다. 재교육이든 깊이를 더하는 교육이든 평생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고 사회적 합의다. 철저하게 서열화돼있는 대학, 출신 학교는 노동시장에서 성능이 각기 다른 ‘무기’다. 전쟁터가 된 노동 시장에서 경쟁은 남녀, 세대를 넘어 더 살벌해지고 있다. 2년 반만 다니는 단과대 개념이라고 했음에도 ‘입시 지옥을 뚫고 들어와 4년을 다녀야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대학 캠퍼스’에서, ‘내가 다니고, 내가 졸업한 대학’에서는 안된다고 반대하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민낯인데 쉽게 되겠느냐 이 말이다.

흔히 배움에는 늦음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그 늦은 배움을 학문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해도 그 배움의 과정을 ‘젊어서 못 딴 학위 따기’ 수준으로 만들지는 말자. 정부가 나서서 ‘학위 신분 세탁’이라는 천박한 성인 교육 시장을 열었다는 비판만큼은 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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