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에 6만원?" 콧방귀 뀐 '수문장' 알바 해보니

머니투데이 윤준호 기자 | 2016.08.05 07:06

[폭염 속 극한 알바]①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온몸 불덩이 "알바생 노고 상상이상"

편집자주 | 낮 최고기온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변함없이 일하는 '알바생'들이 있습니다. 더워도 꿋꿋이 일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여름나기 현장을 달려갑니다. 머니투데이 사건팀 기자들이 비록 일일체험이지만 독자 여러분께 이색 아르바이트 현장을 생생히 전하며 공감의 폭을 넓혀가겠습니다.

3일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본 행사에 앞서 공개훈련을 갖는 모습./ 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
숨이 턱턱 막혔다. 흐르는 땀에 눈조차 뜨기 힘들었다. 온몸은 5분도 안돼 땀범벅이다. 체감온도가 얼마인지 가늠도 안된다.

20분 남짓 행사란 말에 우습게 봤다. 일급으로 6만원을 준다니 '꿀알바'(노력 대비 보수가 좋은 아르바이트)라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겪은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상상 이상이었다.

서울 한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오른 3일. 수문장 알바를 체험하고자 경복궁을 찾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방울이 등줄기를 적신 이날 수문장 교대의식에는 알바생 46명이 모였다. 대부분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로 기자만 처음이었다.

수문장 교대의식은 조선시대 임금이 살던 경복궁에서 오전·오후 한차례씩 진행한다. 알바생은 조선시대 당시 군인들과 똑같은 복식과 무기를 착용한다. 행사 시간은 약 20분.

역할은 △대열을 이끄는 수문장 △뒤따르는 종사관 △깃발을 든 전루군 △징이나 북을 치는 취타군 △장검을 든 정병 등으로 나뉜다.

그중 기자는 맨 뒤에서 대열을 따라가는 정병을 맡았다. "그나마 동선이 가장 단순하다"는 행사 감독 권유에 따랐다. 옛 호위무사 모습을 재현하고자 수문장 키를 182cm 이상으로 제한한 점도 정병에 배치된 또 다른 이유다.

실전 투입에 앞서 개인훈련을 가졌다. 길이 2m, 무게 4kg인 장검을 들자 팔뚝이 뻐근해졌다. 군 제대 이후 오랜만에 해본 좌향좌, 우향우는 낯설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티셔츠는 곧 땀으로 젖었고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이 엄습했다.

수문장 교대의식 본 행사. 파란색 복장이 대열 맨 뒤에서 따라가는 '정병'이다./ 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
제식 이상으로 큰 적은 더위였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경복궁 마당은 찜통으로 변했다. 땅에서 나온 열기가 아지랑이를 이뤘다. 숨 한번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이전까지 힘든 기색 없던 다른 알바생들도 하나둘 지쳐가는 모습이었다.

여름철 특히 힘들지만 수문장 알바 채용 경쟁률은 좀처럼 3대1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오전 9시에 도착해 2차례 교대의식과 공개훈련, 행사준비 등 6시간 정도 일하고 6만원을 받는다. 시급 1만원인 셈이다. 올해 최저임금 시급 6030원보다 월등히 높다. 취업준비생·투잡 알바생에게 인기다.

수문장 알바 6년차인 연극배우 김모씨(29)는 "짜투리 시간에 놀지 않고 일해 용돈이라도 벌고자 시작했다"며 "여름철이 가장 힘들지만 그래도 넉넉지 않은 주머니 형편을 생각하면 더위도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본 행사는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시에 열린다. 알바생들은 행사에 앞서 전통복으로 갈아입는다. 나눠준 티셔츠에 속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철릭'이라 부르는 호위무사 복식으로 몸 전체를 감싼다. 이쯤만 해도 이미 방한복에 가깝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두꺼운 신발과 바람 안 통하는 모자는 필수다. 인조수염, 장검, 옆구리에 차는 단검은 덤이고 키가 작으면 5cm 깔창도 껴야 한다. 준비를 모두 마치는 데만 30분이 걸린다. 시작도 전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전통예규상 장신구 착용은 안된다"는 주문에 따라 안경도 벗었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본 행사엔 총 46명이 투입된다. 채용 경쟁률은 보통 3대1 정도다./ 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
복장을 제대로 갖추니 겨우 한 발짝 떼기가 쉽지 않다. 안경을 벗어 앞은 아득했다. 한점 그늘 없이 햇볕을 그대로 받아 몸은 불덩이 마냥 뜨거운데 열기는 방출되지 않고 상·하체를 맴돌았다. 몸 곳곳에서 땀이 났지만 식힐 방법이 없었다. 참기 힘들어 한숨을 쉬자 옆 사람이 말했다. "교대의식 도중에 쓰러진 사람도 있어요."

목이 타 들어가도 수염이 떨어질까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몇몇 알바생은 작게 벌린 입에 얼음 하나를 넣어 잠시나마 갈증을 풀었다. 10분쯤 대기하자 '둥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출발 신호다. 북소리에 맞춰 왼발을 디디는 순간 더위에 지친 심신 탓에 배웠던 제식 동작은 그나마 까마득해졌다.

실수 연발이었다. 왼발이 나갈 차례에 오른발을 딛고 제자리걸음을 해야 할 때 무심코 앞으로 나갔다. "정신차려요." 외치는 옆 사람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꼿꼿이 들어야 할 장검은 땅바닥에 끌리기 일쑤였고 선크림과 섞인 땀이 눈에 들어와 따가웠다.

행사시간 20분이 곱절은 더 길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대열을 따라가다 출발지로 돌아왔다. "수고했다"며 격려하는 말에 대꾸조차 힘들 만큼 지쳤다. 물을 수차례 들이켰지만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팔에는 알이 배겼고 정수리에선 열이 났다.

"두 번은 못하겠다"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수문장 알바는 한국문화재재단이 면접, 실기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가장 중요한 요건은 체력이다. 재단 관계자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못 버티고 관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관람객들이 행사를 즐기면서 한번쯤 알바생의 노고도 생각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본 행사./ 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

베스트 클릭

  1. 1 '아파트 층간 소음 자제' 안내문... 옆에 붙은 황당 반박문
  2. 2 "차라리 죽여달라" 한국어선, 해적에 납치…폭행에 고막도 터져[뉴스속오늘]
  3. 3 '뺑소니 혐의' 김호중 공연 강행, 공지문 떡하니…"아티스트 지킬 것"
  4. 4 '말 많고 탈 많은' 김호중의 수상한 처신
  5. 5 이정재는 '490억 주식부자'…따라 산 개미들 '처참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