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도 없는 1평' 무더위와 싸우는 쪽방촌 사람들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 2016.07.30 05:50

"무더위에 2시간마다 잠에서 깨"…"선풍기 켜도 덥다" 골목·서울역·그늘 찾아 다니는 주민들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쪽방촌/사진=김주현 기자
"자다가도 몇 번씩 더워서 깨지. 괜히 밖에 나갔다가, 모기 때문에 또 금방 들어오고…"

연일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며 폭염을 이어가던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 공원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천모씨(53·여)가 말했다. 말을 잇는 천씨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무심히 내버려두다 손으로 '슥' 쓸어버리고 말았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섭씨 30.5도까지 올랐다. 비가 내렸던 전날을 제외하곤 열흘 내내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이어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쪽방촌이 있는 동자동 기온은 오후 6시가 다 돼서까지 '30도'를 기록했다.

천씨는 7년 전 쪽방촌에 자리잡았다. 남편과 단 둘이 방 한 칸을 마련해 살다, 시골서 할머니와 살던 아들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전보다 좀 더 넓은 쪽방으로 옮겨왔다.

천씨 세 식구는 3.3㎡(1평) 남짓한 쪽방 두 개를 연결해 살고 있다. 천씨 부부 방 위에 달린 작은 창문은 그나마도 건물에 가려 제 몫을 못하고 있었다. 워낙에 더운 날씨다 보니 선풍기를 틀어도 '텁텁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씻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좁은 부엌에서 팔다리에 찬물을 끼얹는 정도가 전부다.

천씨는 "선풍기를 틀어 놓아도 더운 바람이 부니, 밤에도 2~3시간에 한 번씩은 깬다"며 "밖에 나가도 열대야에, 모기까지 기승을 부리니 얼마 있지 못하고 다시 들어오곤 한다"고 했다. 천씨가 사는 건물엔 방문 마다 방충망이 달려 있었다.

주민들은 쪽방 안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식사를 해결하려 근처 배식소를 찾거나 공원에서 1~2시간 앉아서 주민들과 수다를 떠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일정이 없기 때문이다. 쪽방촌 내를 순찰하는 경찰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환이 있는 주민들이 많다보니 집 밖을 잘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1200여 가구 중에는 60~80대가 절반 정도다.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붙어있는 용산보건소 '건강관리' 안내장/사진=김주현 기자
건물마다 어두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문이 빽빽이 차있다. 창문조차 없는 방도 부지기수다. 그렇다 보니 방 문은 거의 열려있다. 한 걸음 간격으로 붙어 있는 방에선 가끔 들리는 기침 소리도, 텔레비전 소리도 온 층에 울린다. 하지만 동굴 같은 건물 구조 탓에 문을 열어 둬도 바람은 잘 통하지 않는다.

골목을 지나다 들어간 건물에선 한 할머니가 저녁거리로 오이국을 끓이고 있었다. 한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공용 부엌에서 가스불을 쓰니 '불가마'가 따로 없었다. 1분만 서 있어도 얼굴에 땀이 찼다. 할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몇번을 부엌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

더위를 피해 쪽방촌 쉼터인 '동자희망나눔센터'에 가거나 공원에 한쪽에 있는 '방범지구대' 컨테이너를 찾는 주민도 있다. 일부는 인근 서울역 입구나 바람이 잘 통하는 골목으로 간다. 해가 지면 '근처 은행 건물 앞이 시원하다'는 소문에 그곳으로 모이기도 한다. 한 주민은 "쉼터에 있으려면 1000원 짜리 음료를 사야한다"며 "잠깐 시원하자고 1000원을 쓰기는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 했다.

'수다의 장'처럼 주민들이 모이던 공원에도 발길이 줄었다. 그늘이라 해도 공원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땀이 등줄기를 따라 흐르기 때문. 경찰은 "날씨가 좋을 땐 훨씬 더 많은 주민들이 모이는데, 더워지다 보니 인원이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원에는 8명 남짓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계속되는 폭염에 용산보건소도 쪽방촌 주민 건강관리에 나섰다. 용산보건소는 지난 21일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혈압·혈당 체크나, 우울증 선별검사, 건강 상담 등을 실시하고 있다.

동자희망나눔센터 관계자는 "주민센터에서는 일주일에 2번, 보건소에서는 한 번씩 건강 체크를 하러 온다"며 "주민들도 그늘을 찾아다니며 힘들게 무더위를 이겨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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