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의 시선]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뉴스1 제공  | 2016.07.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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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수면 위로 보이는 얼음덩어리일 뿐입니다. 이 소설이 독자 여러분들에게 저 어두운 바닷속 그 수면 아래 잠겨있는 죄악과 진실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마주하는 ‘순간’이 되어준다면 <군함도>의 작가로서 저는 제몫을 다하는 것이라 믿습니다…젊은 독자들이 과거의 진실에 눈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뎌준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각성과 성찰을 시작한다면 이 작품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얼마전 한수산이 작품 구상에서 출간까지 무려 27년이나 걸린 소설 ‘군함도’를 내놓으며 말미에 붙인 작가의 말의 한 구절이다. 일제 강점기에 하시마섬(일명 군함도) 등에 징용으로 끌려가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끝내 (원폭) 피폭자로 생을 마감한 조선인들의 삶을 망각 속으로 흘려보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료발굴과 현지취재, 창작과 개작을 거듭하며 작품을 내놨지만 엄청난 역사의 진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토로다. 1,2권 합쳐 모두 1000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역작을 덮으면서 엉뚱하게도 “일상의 삶에서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믿고 주장하며 비판하는 것들은 진실 혹은 사실에 얼마나 근접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선배 언론인이 쓴 ‘나향욱을 위한 변명’을 접하고 제목에 눈이 끌렸다. 사적인 자리에서 뱉은 ‘개돼지 운운 및 신분제 옹호’ 발언 등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공직에서 쫓겨난 나씨를 위한 변명이라니…. 내용은 이랬다. 대중의 코털을 건드린 개돼지 얘기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영화대사를 인용한 것이고 1% 대 99% 발언도 나씨 자신의 신분상승 욕구를 표현한 것인데 대역죄인으로 몰려 파면까지 된 것은 본인으로서 억울하게 느낄 수 있다, 설령 계층 사다리를 복원해야할 교육행정 책임자로서의 인식과 자질에 치명적 결함을 드러냈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 1% 그룹 또는 0.1% 그룹을 자처하며 나씨 이상으로 비뚤어진 사고와 행동을 일삼는 계층이 얼마나 많은가.
그 선배의 글은 나씨도 자신의 사례가 권력을 남용하며 편법과 반칙을 일삼는 우리 사회 특권층에게 자계(自戒)의 기회가 된다면 위로가 될 것이라는 결론으로 맺었다. 이 글을 보면서 문득 나씨는 거대한 시스템의 한 부분일 뿐인데 우리는 어쩌다 실수로 수면으로 삐져나온 깃털만 잡고 흥분할 뿐, 정작 나씨를 희생양 삼아 그들만의 세상을 더욱 공고히 하며 뒤에서 웃고있는 몸통은 방치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북한 핵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강조하며 ‘추신지불 전초제근'(抽薪止沸 剪草除根)이라고 했다는데 되레 이럴 때 써야하는 말이 아닐까.

#‘떠벌이 사업가의 조크’인 줄 알았는데 1년만에 그 조크가 현실이 됐다. 지난 주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 얘기다. 미국의 지성들은 여전히 트럼프를 망나니 취급하며 거부하지만 그를 향한 대중의 지지는 위협적이다. 국내에서도 트럼프 당선을 예상하거나 확신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데, 미 공화당 전당대회를 참관하고 돌아온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의 진단이 흥미롭다. “미국의 바닥 민심을 보니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무관심층, 심지어 민주당원의 상당수도 트럼프가 자신들의 마음과 정서를 정확하게 꿰뚫어보며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해주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선거는 대중과 유리된 오피니언 리더들만의 호불호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반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최근 언론기고에서 “균형을 앞세우는 언론의 양비론이 괴물을 키웠다”고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도시빈민·노동계층 등의 삶을 외면한 채 통합·연대 등의 '고결한' 명분만 잡고 브렉시트를 매도했던 자폐적 분석의 재탕이다. 언론학자 강준만은 크루그먼이 무지와 차별의 산물이라고 비웃는 트럼프 현상에 대해 ‘위선의 게임’의 전복 또는 종언이라고 진단한다(☞강준만 '위선의 종언'). 트럼프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모든 종류의 위선에 맹폭을 가하는 전사로 활약하며 마침내 대선후보까지 꿰찼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3분의 2는 미국 경제가 조작됐다고 여기고, 10명 중 7명이 엘리트 정치인은 보통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구조와 트럼프 현상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전체를 보면 브렉시트든 트럼프현상이든 이해못할 바 없다.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도입 및 성주 배치 논란이 염천지절(炎天之節)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드가 단순한 무기차원을 넘어 군사 경제 외교안보 안전환경 지정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는 뜻일 게다. 문제는 이토록 복잡하고 다중적 의미를 가진 사드 배치 결정이 밀실에서 속전속결로 이뤄졌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만큼 대통령 혹은 정부를 향한 ‘무수한 비난과 저항’은 이유 있다. 반면 다중적 미사일 방어망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라는 사드의 효용성을 부정하고 전자파 위험을 과장하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사드를 둘러싼 찬반 양 진영의 주장은 전혀 타협점이 없어 보인다. 보수의 눈은 북한의 위협 및 주권국가의 자위권에 꽂혀있고, 진보의 눈은 주권재민의 민주성과 남북화해, 미국의 아시아책략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접점을 찾는다면 어디쯤일까. 일단 박근혜 대통령은 “일각에서 사드배치를 취소하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디 제시해 달라”며 통치권적 차원의 사드 결정 자체는 번복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벌집쑤신 듯한 성주의 대안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 박근혜표 진정성으로 직접 현장을 찾아 ‘배치 시점과 조건’을 매개로 주민을 설득하는 통과의례가 사드 논란을 풀어가는 첫 단추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계기로 찬반 진영 역시 자신들의 주장이 빙산의 일각만 보는 편협한 시각이 아닌지, 상대방의 주장에 귀기울일 의지가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논란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것은 아닌지, 반대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아닌지, 낯뜨겁게 로맨스와 불륜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말이다. 짧은 지식과 편견으로 수면위 빙산도 제대로 못보면서 자의적으로 빙산 전체를 재단하면 끝없는 싸움밖에 없다. 그 실마리는 정부가 풀어주는 게 맞다.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다가 북한 4차 핵실험을 기화로 작전하듯 국민들 뒤통수를 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 말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주변의 의혹과 논란을 풀어가는 방식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그가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4대 권력기관을 장악해 국정을 농단한다는 구설수에 오르고 정치권과 언론의 표적이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쏟아지는 돌팔매는 도를 넘었다. 그가 자초한 측면도 있겠으나 그를 향한 의혹과 비판도 근거와 방향이 정확하고 적절해야 설득력을 갖는다. 본인과 주변 커넥션 의혹이 빙산의 일각인지, 빙산 그 자체인지 초점을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은 화력을 동원하는 절제가 있어야 맞는 사람도 아픈 법이다.

영국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통과된 직후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의 SNS에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거야'(What We Have Done)라는 후회의 글이 대거 올라왔다는 기사가 있었다. 한수산의 소설에는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리틀보이)을 투하한 B29의 부기장이 상공으로 치솟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보고 "하느님 맙소사, 우리가 지금 뭘 한거야"(Oh my god, what have we done)라고 소리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염천지절에 우리도 가끔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자문하면서 세상을 보면 좋겠다. 그래야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우는 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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