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는 마땅히 일용할 양식이 따라야 하고 흥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어디, 모든 생이 다 그런가.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속이는 삶을 잘 타 넘는 것이라는 것쯤 알고 사는 이들에게서나 흥이라는 것은 자라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시대 도시의 저 근로자도 삼십 년 농주를 마시며 일했다 한다. 노동을 마친 저녁이면 탁주배 띄워 놓고 근심을 잊고 용기를 얻고 그렇게 ‘출렁거리는 꿈’을 저어 저어서 오늘에 이르렀노라 한다. 그러니 막걸리 담아냈을 저 양은주전자야말로 화수분이다. 아직도 너울너울 싹을 키우고 있지 않은가.
디카시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든 일상의 삶 혹은 내면의 깊숙한 것들을 형상화해 함께 즐기며 위무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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