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오늘…'희대의 탈옥수' 붙잡다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 2016.07.16 06:30

[역사속오늘] 신창원 "문제아들에게 사랑 줘야"

1999년 7월15일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탈옥한지 2년6개월만에 검거됐다. /사진=뉴스1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넌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안왔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새끼야, 돈도 안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 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신창원 907일의 고백 중)

1967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신창원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간암을 앓고 있던 어머니를 잃었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2학년때 중퇴 했고 이후 방황이 시작됐다.

신창원은 그의 나이 고작 15살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출소 후 서울로 올라와 청량리역 주변 유흥가에서 음식점 배달원 등을 전전했지만 또다시 절도를 저질렀다. 몇 차례 더 교도소를 들락날락한 그는 점점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1989년 공범 4명과 함께 서울 성북구 돈암동 정모씨 집에 침입한 그는 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만다.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신창원은 1997년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 환기통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했다. 금방 잡힐 줄 알았던 신창원의 행방은 묘연했고 경찰과 군대 등 97만명이 투입됐다.

그동안 신창원은 절도 행각으로 9억8000여만원을 빼앗았고 다방 종업원, 주유소 종업원 등 15명의 여자들과 동거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도 했다. 그동안 경찰과 5번이나 직접 맞닥뜨렸지만 탁월한 처세술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신창원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다. 1999년 7월15일 가스관 수리공이 우연히 신창원을 목격하면서 탈옥한 지 2년6개월만에 검거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수사의 공조 부재, 주민신고 무시 등 온갖 허점이 드러났고 경찰 여러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창원은 기존 무기징역에 22년 3개월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이후 마음을 다잡은 그는 교도소 안에서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에 연이어 합격하며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했다.


"나 같은 범죄자가 다시는 없게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들에게 사랑을 줘야 한다."

"재소자의 90%가 부모의 정을 받지 못했거나 가정폭력, 무관심 속에 살았다. 교도소를 아무리 많이 짓고 경찰을 늘려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

"사회에서 문제아라고 치부해 버린 아이들은 정에 굶주린 불쌍한 애들이다. 가까이 가 꾸짖으면 폭행을 당할지 모르지만 마음의 문을 열면 의외로 여린 그들의 순수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별종이 아니다."

신창원은 수감 생활 중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수차례 당부했다. 자신과 같은 범죄자들이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게 쉽진 않았다. 2011년 그는 경북 북부 제1교도소 독방에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조른 채 자살을 시도했다. 신음하고 있던 중 교도관에 발견돼 안동지역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중태에 빠졌다. 현재는 회복 후 전주교도소로 이감돼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4월에는 신창원의 근황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는 한 방송에 출연해 "지난 2002년부터 신창원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며 "요즘 신창원은 시의 매력에 빠져 5편을 쓰면 나에게 보내겠다고 해 격려해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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